미국 달러화(그린백)의 위상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50여년간 글로벌 경제의 기축통화 역할을 해온 달러는 최근 5년간 약세행진을 거듭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달러화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로 촉발된 미국 경기침체의 우려가 가중되면서 세계 16개 주요 통화 중 15개국 통화에 대해 2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한 상태. 세계적인 톱 모델인 지젤 번천이 모델료로 달러화를 받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인도 정부가 관광지 입장료로 달러가 아닌 현지 통화인 루피화를 받겠다고 선언했다. 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는 달러를 배제하고 자국 통화로 양 국 간 무역대금을 결제하기로 의논 중이다. 인도정부는 타지마할을 비롯한 주요 관광지에서 입장료를 루피로만 받기로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8일 보도했다. 달러 약세로 관광지 매출이 줄어들자 인도 문화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 인도 유적지를 방문하는 입장료를 1인당 5달러로 책정할 당시에 1달러당 50루피였던 환율이 지금은 1달러당 39루피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도 문화부는 “입장료 5달러를 루피로 환산하면 200루피 정도인데 그동안 우리는 1인당 50루피씩 손해를 봤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캐나다달러(루니화)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의 그린백과 가치가 같아진 이후 캐나다 전역에서 그린백 사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달러가 동이 났다. 캐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와 토론토도미니온(TD)은행에서 9월 이후 미 달러화 수요가 4배로 늘었다. 이는 미국에서 싸게 물건을 구입하려는 쇼핑족을 포함해 미국 캘리포니아 등 따뜻한 지역으로 겨울여행을 떠나려는 여행족, 미국 내 사업을 확대하려는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그린백을 사재기하기 때문이다. 19일 브라질을 방문하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자가 양국 교역 자금을 자국통화로 결제하도록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나라는 당초 올해부터 무역대금 결제에서 미국 달러화가 아닌 상호 자국통화를 사용하기로 합의했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이행을 늦추고 있는 상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산유국들은 달러에 대한 고정 환율제(페그제)를 유지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산유국들은 유럽에 기름을 수출할 때도 달러로 결제하는 바람에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는 실정. 이에 17ㆍ18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베네수엘라ㆍ이란 등 반미 경향의 산유국들이 국제석유거래 결제통화를 달러에서 다른 통화로 변경하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중동 산유국들은 달러 페그제를 폐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페그제는 그대로 유지하되 환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헨리 폴슨 미국 재무부 장관은 16일 “달러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 달러화 하락을 방치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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