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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하> 일·여가의 황금률을 찾아서

시민합창단… 제과제빵… 여행… '몰입의 즐거움' 삶을 바꾸다

지난달 30일 서울시합창단의 전문 합창단원들과 함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는 시민합창단의 모습. 2012년 김명엽 단장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시민과 함께 합창 부르기 캠페인'은 시민들의 높은 호응으로 올해 벌써 네 번째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그동안 시민합창단을 거쳐간 서울시민들만도 500여명에 이른다.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서울시합창단

지치고 무기력한 일상에 가볍게 시작한 취미활동

성취감 등으로 삶의 질↑

"일-여가 양립 위해선 직장인 근로시간 단축

사회적 합의부터 필요"


지난 10일 서울시합창단의 전문 합창단원들과 함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는 시민합창단의 모습. 2012년 김명엽 단장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시민과 함께 합창 부르기 캠페인'은 시민들의 높은 호응으로 올해 벌써 네 번째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그동안 시민합창단을 거쳐간 서울시민들만도 500여명에 이른다. /제공=세종문화회관·서울시합창단

지난달 30일 저녁7시10분.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조금 늦은 듯한 시각,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예술동은 100명이 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서울시합창단의 연말 정기공연 '셀레브레이션 오브 크리스마스'를 연습하기 위해 모인 '시민합창단' 단원들이다. 얼마 뒤 김명엽 단장이 단상에 오르고 곧장 연습이 시작됐다. "좋아요. 소리가 지금 굉장히 예뻤어요"라는 단장의 한 마디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가 "갑자기 왜 이러지"라는 가벼운 질책에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클럽이 좀 더 어울릴 것 같은 20대 여성과 어린 딸의 손을 붙잡고 온 젊은 아빠, 어느 회사 '부장님'쯤 될 법한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들까지, 한자리에 있다는 게 자못 어색해 보이는 천차만별 외양의 사람들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이 보였다.

바로 기대감과 약간의 흥분이 어린 듯한 밝은 표정이 그것이었다. "여기서 연습하기 싫은 사람 손 들어보라고 해보시면 아마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시민합창단의 베이스 성부 단원이자 총무인 성원경(56·회사원)씨는 이 모든 일이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다.

총 140명의 시민합창단 단원들이 매주 월요일 저녁 연습을 위해 모인 게 이날로 벌써 여섯 번째. 절반 이상이 직장인인데도 간혹 연습에 빠지는 사람은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의 예닐곱 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합창단 측의 설명이다. 심지어 이 중 100명은 이미 서울시합창단과 함께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 이른바 '유경험자'들이다. 처음에는 도전을 망설이다가도 한 번 하게 되면 푹 빠지게 된단다. 일례로 성씨만 해도 1회 때 우연히 참가했다가 4년째 개근 중이다. 총무 일도 자진해 맡았다. 성씨는 "때로는 200~300명에게 문자를 돌리기도 하고 단원·분과장들과의 식사 등으로 개인 비용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그 모든 활동마저 그저 다 기쁘다"고 말했다. 그가 유별난 것은 아니다. 성씨는 "봄만 되면 문자를 많이 받는데 대부분이 '지난번에는 급한 일로 참가하지 못했는데 올해도 시민합창단 모집하겠죠'라는 내용"이라면서 "혹시나 단장님이 바뀌거나 해서 더는 합창단이 꾸려지지 않으면 어쩌나, 우리의 제일 큰 걱정은 그것뿐"이라며 웃었다.



가벼운 취미활동이 일로 지친 삶에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당연한 말처럼 들려 오히려 그 중요성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자. 즐거운 취미활동 하나로 삶의 만족도가 크게 올라간 사람들, 아예 삶의 방향성이 바뀔 정도로 행복해진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한 TV홈쇼핑에서 상품기획자(MD)로 근무하고 있는 윤지혜(31)씨는 입사 6년차로 접어들며 일이 재미없고 능률도 오르지 않는, 이른바 슬럼프를 겪기 시작했다. 매일 무기력하게 직장과 집을 오가던 그가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것은 올 초 제과제빵이라는 취미를 만나면서부터다. 윤씨는 "일상의 지겨움을 견기다 못해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까지 빠질 줄은 나조차 몰랐다"며 "주말을 재밌고 알차게 보내니 일에도 집중이 잘 된다"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 개인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수원(49) 원장 역시 일과 여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적극 노력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취미인 여행을 떠나기 위해 1년에 한두 번, 일주일에서 열흘씩 병원 문을 닫는다. 그는 "처음에는 주변 사람 모두가 '하루 문 닫으면 손해 보는 돈이 얼마인데 뭐하는 거냐'며 큰일이라도 난 듯 굴었는데 이제는 다들 익숙해졌다"며 "환자들조차 '원장님 또 여행 떠나시네요. 부럽다'며 선선히 스케줄 조정에 응해줄 정도"라고 웃었다. 물론 환자들을 돌볼 책임을 저버릴 수는 없기에 몇 년 전부터는 가까이 있는 동료 의사와 협력해 서로 휴가 기간마다 각자의 환자들이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해뒀다. "내 마음이 행복해야 상담도 잘 돼지 않겠냐"는 게 그의 논리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즐거움과 개인의 능력·재능을 시험함으로써 얻는 성취감 등 취미활동이 한 사람의 삶에 가져다주는 가치가 적지 않다는 점은 이미 많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도 밝혀진 바 있다. 특히 취미처럼 능동적인 여가를 통해 얻는 기분 좋은 경험은 헝가리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주창한 '몰입(Flow)'의 개념과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몰입은 무언가에 흠뻑 빠져 심취한 무아지경의 심리 상태를 뜻하는 말로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이 경험은 사람들이 인생을 더 즐기고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다. 하루에 몰입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삶의 질은 향상된다. 더 강하고 자신에 찬 자아가 형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특히 한국인들은 이처럼 능동적인 여가활동인 '취미'를 가지기를 여전히 주저한다. 사람들이 TV 시청과 잠·산책 등의 가벼운 휴식활동으로 여가를 보내는 것을 칙센트미하이는 "시간과 활동을 설계할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를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장시간 노동과 고용유지에 대한 불안 등으로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취미활동 등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이 "여가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려면 무엇보다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합의부터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개인적 차원의 도전과 노력도 물론 필요하다. 한 전문가는 "뻔한 소리 같지만 삶이 힘들다고 무기력하게 지내기보다 자신의 삶의 만족을 가져다줄 수 있는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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