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다. 한국 자본 시장은 오는 2016년 병신년(丙申年) 새해보다 먼저 새로운 시작을 맞을 듯하다. 외형이든 내실이든 국내 증권업계 1·2위를 다투는 대우증권이 21일 매각 본입찰을 통해 새 주인을 맞기 때문이다. 지난 1970년 동양증권으로 출범해 1973년 대우그룹이 인수하며 사명을 바꾼 대우증권은 1997년 말 외환위기에 이어 1999년 대우 사태를 맞으며 2000년 산업은행이 대주주가 됐다. 수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또 그만큼 성장한 대우증권은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맏형으로 이견이 없는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굳이 숫자로 따지면 자기자본이 4조2,581억원인 대우증권은 NH투자증권(4조4,954억원)에 이어 2위인데 올해 실적으로 보면 영업이익이 5,000억원에 육박하며 업계 최고다. 대우증권 인수에 출사표를 던진 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KB금융지주 등 3개사 중 누가 새 주인이 되더라도 한국 증권업계의 새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한투와 미래에셋·KB금융 모두 대우증권 인수 후보로 손색이 없지만 이들 기업의 장단점과 업계 내 위치, 대우증권이 갖는 무게감 때문에 인수합병(M&A)으로 증권업계와 금융업에 몰고 올 변화의 폭과 깊이는 많이 다르다. 은행이 주력인 KB금융은 대우증권을 품으면 증권 부문도 단숨에 명가의 반열에 오른다. 기업 인수 후 최대 현안이 되는 구조조정 이슈도 최소화할 수 있다.
한투와 미래에셋의 경우는 KB금융과 반대다. 이미 증권과 자산운용업에서 각자 일가를 이룬 두 회사는 대우증권까지 인수하면 국내 자본 시장에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1위가 된다. 한국 금융투자업의 대표 주자가 돼 업계 혁신을 선도할 책임을 지면서 글로벌 최고 증권사나 투자은행(IB)들과도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몸집과 실력을 갖추게 된다. 정부가 10여년 전부터 정책적 의지를 담아 부르짖었지만 공염불에 그친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실제로 가시화하는 셈이다. 하지만 3,000명이 넘는 대우증권 임직원은 물론 한투가 됐든 미래에셋이 됐든 힘든 구조조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일개 회사의 인적 감축이라도 간단히 치부해서는 안 되지만 어렵게 마련된 증권업과 IB 부문 대변화의 물꼬를 놓치는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될 것이다. 마침 증권업은 사모펀드(PEF)와 투자자문·자산관리(WM)로 지평도 넓혀나가고 있다. 국내 5대 증권사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대우증권의 새 주인이 편한 상대면 좋지만 내 자리가 위험해지는 어려운 상대가 와야 한국 증권업과 금융, 그리고 우리 아들딸에게 미래가 생긴다"고 대우증권 매각에 대해 촌평을 했다. 대우증권의 적정 인수금액이 컨센서스를 찾아가는 상황에서 산은과 금융당국이 대우증권의 새로운 운명을 앞두고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당국과 산은이 한국 금융의 백년대계에서 한 획이 될 대우증권 매각을 연말 차질없이 마쳐야 할 사명감이 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손철 증권부 차장 runiro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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