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이른 오전 명동 제조·유통 일괄형 의류(SPA) 브랜드 H&M의 매장 앞은 H&M과 명품 브랜드 발망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며칠 밤을 노숙한 '캠핑족'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수백만원대에서 최고 1,000만원을 호가하는 발망을 10분의1도 안되는 수준에 살 수 있다는 이유로 오매불망한 사람들은 문을 열자마자 제품을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을 벌였고 매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지난달 선보인 유니클로와 전 에르메스 수석디자이너와의 협업 제품인 '유니클로 앤드 르메르' 컬렉션 역시 출시 당일 주요 매장에 오픈 전부터 1,000여명이 줄을 서고 온라인몰에서는 삽시간에 주요 상품이 품절됐다. 지난해 일본의 유명 브랜드 슈프림과 합작해 내놓은 나이키와 '뉴발란스 체리블라썸'도 하루 만에 완판됐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한정판에 죽고 못 사는 젊은층의 심리로 해석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단순히 한정판이라는 이유로 이들 브랜드에 열광하는 것일까.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소비를 놀이로 여기는 젊은 세대들은 클래식한 명품보다는 트렌디함을 추구하고 가치 있으며 갖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포미(for me)족'을 자처한다. 패션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들은 어떤 브랜드와 제품에 열광할 경우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구입하고 손에 넣지 못할 경우 온라인 사이트를 모두 뒤져서 웃돈을 주더라도 당장의 트렌드를 좇는 성향이 짙다"고 분석했다.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은 젊은 세대는 곧바로 승리의 기쁨을 SNS에 올리고 관객들은 그들의 트렌디함에 환호성을 보낸다.
이 같은 배경 속에 '세기의 브랜드'들은 제품을 사서 웃돈을 얹어 적지 않은 차익을 남기고 되파는 비도덕적인 리셀러를 양산한다. 즉 리셀러의 존재는 해당 브랜드에 열광하는 마니아들이 많다는 반증이며 브랜드의 가치를 보여준다. 세상에 한 번뿐인 경기를 보기 위해 기꺼이 암표 가격을 지불하고 입장하는 관객처럼 10배 가까운 웃돈을 주더라도 손에 넣고 싶은 브랜드라는 점을 인정받는 셈이다.
물론 시장을 혼탁하게 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 사리사욕을 챙기는 리셀러는 문제다. 하지만 이들 리셀러가 주목한 제품이 모두 이 땅에 들어와 있는 해외 브랜드라는 점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과연 국내 패션업계가 H&M과 발망, 유니클로와 르메르, 나이키 슈프림처럼 리셀러를 양산하고 캠핑을 자처할 만큼 소비자 욕구를 극대화시키는 제품을 만들어 왔는지 묻고 싶다.
"마케팅팀에서 'H&M 컬렉션'처럼 신제품에 대해 줄을 설 수 있게 만들어 보라고 당부하더군요. 하지만 이는 기업의 마케팅과 홍보의 능력치를 벗어난거죠. 소비 트렌드가 급변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더 열광적인 제품을 만드는 게 정답이 아닐까요." 패션업체의 한 홍보담당자가 전한 K패션의 현주소다.
심희정 생활산업부 차장 yvett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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