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백상논단] 한국 민주주의 삼적

일관성 없는 정치제도 민주화 발목… 공천·비례대표·장관겸직 악습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한 세대 만에 이룩한 자랑스러운 나라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모범국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감은 매우 낮다. 정치인들은 미움을 받고 정치는 국가발전을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선거 때만 열풍이 분다. 여야 간 정권교체도 이뤄졌고 정치신인들도 계속 대거 유입됐다. 그런데도 한국 민주주의는 계속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실패의 원인들로 남북분단, 영호남 지역주의, 이념갈등, 세대갈등, 좌우 진영논리 같은 상황적 여건들이 흔히 거론된다. 제왕적 대통령제, 여야대립, 정치인의 무능, 패거리 정치와 같은 증상들도 원인인 것처럼 종종 언급된다. 그러나 여건이 바로 증상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것을 매개하는 정치제도들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선거철만 지나면 국민은 무시되고 대통령 대 여당, 여당 대 야당의 대립구도가 국정을 마비시키며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이나 당권 지도부의 눈치나 살핀다. 당론 투표에다가 여야 간의 대립구도와 보수·진보 진영논리가 개입하면 똑똑하다는 사람도 바보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물갈이로 정치신인을 대거 영입한들 소용이 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고 있는가.

민주화 30년을 목전에 두고 우리는 이제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적들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제도들이 제도적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는 선진국들에서 좋다는 제도들을 두루 수입해서 쓰고 있다.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나름대로 좋은 제도이고 일리가 있다. 그런데 일관성이 없이 서로 모순이 되는 제도들을 이것저것 혼합시켜 놓으면 어느 것도 기대했던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우리나라 국민정서상 지금처럼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가장 문제가 되는 제도적 요소들은 다음의 세 가지다. 이들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민주주의는 계속 실패할 것이고 우리나라의 미래는 계속 어두울 것이다.

첫째 정당의 공천제도다. 대통령이나 정당 지도부가 공천을 좌우하는 현행 제도는 대통령제 정부형태에서는 치명적인 독이다. 제왕적 대통령, 여야 간 극단적 대립, 무능한 정치인을 양산하는 근원이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를 추진하겠다고 나온 것은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현 단계 한국 민주정치의 문제점을 정확히 겨냥한 것이다. 이것이 관철되면 한국 민주주의는 열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가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보장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은 본질을 잘못 본 핑계다. 길게 내다보면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은 정치지도자로 평가받을 것이다.



둘째 비례대표제다. 현 국회의원 정수 300석 중 비례대표는 54석이다. 여야가 선거구 협상을 하면서 이 숫자를 늘리거나 줄이자고 한다.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른 이해관계를 반영한 입장이다.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제 정부형태와 비례대표제는 극단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제도적 결합이라는 사실이다. 비례대표제는 정당지도부의 입지를 강화시켜주고 정당의 이념성을 강화시킨다. 비례대표제 도입의 원래 취지는 퇴색한 지 오래됐다.

셋째 국회의원의 장관겸직이다. 대통령의 여당 장악과 여야 간의 대립구도를 심화시키는 주범이다.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정책의 전문성이나 일관성도 훼손하는 제도다.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없애야 하는 제도 중의 하나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개헌도 필요하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제도들은 굳이 개헌을 하지 않아도 없애거나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다. 개헌을 하더라도 이 세 가지를 바꾸지 못하면 한국 민주주의는 계속 실패할 것이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들의 심판 기준으로 이 세 가지를 고수하려는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을 쫒아내는 일만큼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한 것이 없다.

정진영 경희대 부총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