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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문턱 낮고 자금조달 쉽다"… 호주, IT 스타트업 새 허브로

자산·수익기준 중 하나만 충족해도 상장 가능


광산업과 농축산업 등 1차 산업의 중심지로 여겨졌던 호주가 정보통신(IT) 스타트업의 새로운 허브로 급부상하고 있다. 호주 경제는 최근 수년 새 주요 수출품인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직격탄을 맞았지만, 스타트업의 젊은 피가 수혈되면서 경제에도 새로운 활력이 돌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의 자료를 인용해 올해 호주의 IT 기업공개시장(IPO) 규모가 전 세계에서 5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3년만 해도 13위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8위로 올라섰고 올해 다시 세계단이나 상승한 것이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1위를 유지했으며 영국이 2위로 그 뒤를 이었다. 아시아 국가 중에는 중국이 3위로 유일하게 5위안에 포함됐다. 특히 딜로직의 집계에는 우회상장 기업은 포함되지 않아, 이들 기업까지 포함하면 호주에 입성한 IT 스타트업의 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실리콘밸리 등 세계 각국의 유망 벤처기업들이 앞다퉈 호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입 문턱이 낮고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도 수월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매출과 영업이익 등 엄격한 수익 기준을 요구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호주는 자산이나 수익 기준 중 한 가지만 충족하면 증시 상장이 가능하다. 자본 조달 후 시가 총액이 1,000만 호주달러(약 83억 5,000만원) 이상만 되면 어느 기업이든 제약 없이 증시에 입성할 수 있다. 창업 초기 자금을 조달받긴 했지만 기술 개발에 전력하느라 이렇다 할 매출 없이 적자에 시달리는 중소 IT 스타트업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인 셈이다.

호주증권거래소의 맥스 커닝햄 이사는 "지난 100년간 광산 창업기업에 적용했던 상장 기준을 현재 IT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며 "광산업이 깊은 침체에 빠져있어 시장은 대안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탄탄한 호주 증시의 체력도 강점이다. 원자재 값 급등락으로 주가도 함께 출렁거리는 것을 지켜봐 온 호주 투자자들은 비교적 위험도가 높은 스타트업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부 기업은 상장 후 대박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호주 니켈 및 금 채굴기업인 인터멧 리소시즈를 통해 우회상장한 '원-페이지'의 경우 상장 당시만 해도 주가가 20호주센트였지만 이후 주가가 5.69호주달러까지 올라 30배 가까이 급등했다. 호주 광산업이 침체기를 맞으면서 관련 기업들이 부실화된 것도 스타트업 유치에 적잖은 도움이 됐다. 스타트업들은 합병이나 주식교환 등을 통해 껍데기만 남은 상장 기업들을 인수, 상장심사나 공모주 청약 등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장내로 진입하는 우회 상장 전략을 쓰고 있다.

이렇게 우호적인 분위기에 힘입어 올 상반기까지 호주 증시에 상장된 IT 기업은 30개로 지난해 12개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올 들어 8월까지 미국 증시에 새로 상장된 IT 기업이 15개인 것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적이다.

다음달 중순께 호주 회사를 통해 증시에 우회상장 예정인 소셜미디어 마케팅기업 '쉐어루트'의 공동창업자 노아 앨버슨은 "실리콘밸리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벤처캐피털을 찾아가면 자금을 모으고 또 다시 모아야 한다"며 "미국의 벤처캐피털들은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기업만을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유입 확대가 호주에서 IT 붐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라고 WSJ는 지적했다. 2억 호주달러 이상 조달한 기업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은 IT 스타트업들만 증시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외국 기업의 상장은 늘고 있지만 정작 규모가 큰 호주의 IT 기업들은 자국을 떠나 미국 등에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가치가 33억 미국달러에 이르는 소프트웨어 업체 아틀라시안은 지난 9일 미국에서 기업공개를 신청했다.

호주가 IT 기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긴 하지만 IT산업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한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기업 자문회사 자칸다캐피탈의 필립 알렉산더 전무는 "호주인들은 땅을 파서 금이나 철광석을 채굴해 중국에 갖다 팔면 돈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며 "하지만 미국 IT 기업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최용순기자 seny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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