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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동전, 망치질과 도둑질





동전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서구에서는 리디아인들이 기원전 7세기께 처음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로마의 사상가이며 정치가인 키케로가 ‘역사의 아버지’라 칭했던 헤로도투스는 ‘역사’의 첫머리에 ‘리디아인들이 금화와 은화를 처음 만들어 쓴 사람들이며 최초의 소매상인들’이라고 적었다.(주 1)

헤로도투스가 말한 주화 제작 기술은 적어도 2,300년 이상 이어졌다. 1551년 들어서야 프랑스에서 망치질 대신 압착기를 사용하는 기술이 선보였다. 엘리자베스 1세 치하의 영국에서는 사람의 망치질 대신 말이 제공하는 동력을 기계로 바꿔 동전을 제작하는 기술이 나왔다.(정작 새로운 기술을 고안한 프랑스 출신의 화폐 기술자 메스트렐은 조폐국에서 쫓겨나고 종국에는 화폐 위조 혐의로 교수대에 매달려 죽었다)

프랑스와 영국이 새로운 화폐 주조 기술을 도입하려 시도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 일손이 모자랐다. 대항해시대의 개막으로 15세기 말부터 아메리카산 은이 유입되고 유럽 중부 보헤미아 왕국의 요아힘스탈에서 발견된 거대한 광산이 토해내는 은을 주화로 찍어내는 데 기존의 망치질 주조법은 한계를 드러냈다. (요아힘스탈 광산에서 생산된 은으로 만든 은화 ‘탈러’가 음운 변화를 일으켜 정착된 화폐 단위가 바로 ‘달러’다)

새로운 주조 기술을 모색한 두 번째 이유는 도둑질 방지. 동전을 조금씩 깎아 금이나 은을 모으는 행위가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주2) 월가의 투자분석가이자 경제사가인 피터 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the Powere of Gold)’에 따르면 이렇게 닳고 닳은 동전이 문제가 되면 예전부터 죄 없는 유대인들이 화를 입었다. 1270년 한해 동안 주화를 깎아낸 혐의로 280명의 유대인들이 참수됐다. 신대륙 발견과 함께 고개 든 상업혁명으로 화폐 유통량이 많아지고 유통속도까지 빨라지면서 동전 깎기 행위가 더 심해지고 대책 마련이 절실해졌다.

대안은 프랑스에서 나왔다. 파리 조폐국의 수석조판공 니콜라 브리오는 1620년 주화의 테두리를 오톨도톨하게 만들거나 가장자리에 글자를 새겨 넣어 조금만 깎아내도 식별해낼 수 있는 주화 제조기술을 고안해냈다. 정작 이 기술을 채용한 나라는 영국. 브리오는 프랑스 기술자들이 신기술 채용을 거부하자 좌절하고 1625년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에서도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브리오는 런던 조폐국에 자리를 얻고 ‘오톨도톨한 주화(milled coin)’라는 이름의 은화 생산 허가를 따냈어도 극소량에 그쳤다. 영국의 새로운 주화에 자극받은 파리 조폐국은 브리오가 사망하기 직전인 1645년 전혀 새로운 시스템을 깔았다. 말의 동력으로 금속을 평평하게 펴고 주화 표면에 무늬를 새기며 테두리를 오톨도톨하게 만드는 전 과정을 기계화한 것.

그러나 프랑스 역시 영국의 전철을 그대로 따랐다. 조폐국 기술자들의 기득권에 밀려 혁신적 신기술은 극히 일부에 적용됐을 뿐 사장되고 말았다. 바통은 다시 영국으로 넘어갔다. 크롬웰이 이끄는 공화정은 파리 조폐국의 기술자를 초빙해 기술을 익혔다. 왕정복고로 즉위한 찰스 2세는 부관참시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크롬웰의 흔적을 지웠으나 화폐 주조기술 만큼은 칙령으로 보호했다.

오랫동안 영국 금화의 대명사이던 ‘기니’가 생산된 게 이 무렵이다. 과학자에서 정치가이자 관료로 변신해 런던 조폐국장으로 재임했던 아이작 뉴턴이 금화와 은화의 순도를 유지하고 교환비율을 정한 것도 바로 이 시절 얘기다.

뉴턴의 숨결까지 들어간 오톨도톨한 초기 금화와 은화는 성공했을까. 반대다. 주화를 깎아내 교수형 당하는 사람이 5~6명이면 50~60명이 숨어서 동전을 깎았다. 1695년 런던 조폐국은 100파운드의 주화 한 자루의 무게를 달았더니 1686년에 비해 절반 수준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주조기술의 발전과 함께 깎아내는 기술도 같이 발전했던 것이다.(완전한 상태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옛 금화나 은화는 거의 없다. 침몰 선박에서나 간혹 발견될 뿐이다)



상업 발달과 산업혁명의 여명기에서 돈의 쓰임새는 점점 중요해지는 데 신뢰도는 떨어져 가던 상황. 영국 의회가 작심하고 나섰다. 1696년 1월21일, 영국 의회는 윌리엄 3세의 요청으로 ‘왕국 주화의 병든 상태를 치료하기 위한 법(the Act for Remedying the Ill State of the Coin of the Kingdom)’을 제정했다. 핵심은 테두리가 깎여나간 돈의 유통 및 사용 금지. 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상업활동이 정지되고 세금도 걷히지 않았다.

한심한 법을 폐기하라는 청원이 쏟아졌지만 의회는 그해 11월 새로운 법률을 통과시켰다. ‘주화의 불건전한 상태를 더 잘 치료하기 위한 법(An Act for the better preventing the counterfeiting the current Coin of this Kingdom)’라는 이름의 새 법률은 구화와 신화의 교환시한을 연장한 대신 낡은 주화의 사용을 아예 금지시켜버렸다. 새 돈의 은 함량이 높아져 납세자들의 부담도 늘어났지만 영국은 주화 건전화를 밀고 나갔다.

잇따라 법이 나온 지 3년 만에 영국의 모든 동전은 가장자리가 오톨도톨한 ‘건전한 돈’으로 바뀌었다. 돈의 품질에 대한 믿음은 상품 매매와 유통을 촉진시키고 신용경제의 싹을 틔웠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꽃핀 이유를 ‘믿을 수 있는 돈, 화폐의 존엄성’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와 전쟁의 와중에서 온갖 반발을 무릅쓰고 완수한 주화 건전화 작업은 ‘대화폐 개혁(Great Re-Coinage)’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대화폐개혁 이후 승승장구했던 영국을 뒷받침하던 파운드화는 1차세계대전의 후유증과 세계 대공황의 여파가 겹친 직후 금본위제도 포기와 더불어 달러화에 지위를 내줬다. 동전에 새겨진 테두리를 보며 생각해본다. 세계의 기축 통화인 달러는 신뢰성 있는 화폐인가.(주 3) 또한 화폐로서 원화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주 4)/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1. 처음에는 금의 함량을 검사하는 데 사용했으나 ‘어떤 가치나 평가를 내리는 척도’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는 시금석(試金石·touchstone)을 처음 사용한 사람들도 리디아인들이다. 오늘날 터키 동부에 위치한 리디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손 대는 것 마다 금으로 변했다는 미더스 왕의 전설이 나온다. 아주 먼 옛날 이 지역에서 풍부하게 산출되던 사금이 고갈되며 미더스왕의 전설이 만들어졌다는 해석이 있다.

2. 동전을 깎는 행위는 화폐에 대한 작은 도둑질에 해당된다. 큰 도둑질은 아예 주조 단계에서 함량을 낮추는 것이다. 화폐주조권을 가진 국왕이나 영주가 함량을 낮춘 금화와 은화를 새로 주조하면 당장은 그 차익이 고스란히 주머니에 쌓인다. 로마가 이런 과정을 거치며 망했다. 오늘날에도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로 군림하는 덕에 막대한 화폐주조차익(Seigniorage)을 누리고 있다.

3. 달러화는 금이나 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불태환지폐다. 영국에서 화폐대개혁이 단행되는 시기에는 통용 화폐의 전량이 동전이고 대부분이 금과 은을 지불준비금 삼아 발행되는 정화(正貨)였으나 미국 달러화의 태환성(금으로 바꿀 수 있는 화폐)은 1971년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정지 긴급 선언과 함께 사라졌다. 달러는 ‘미국에 대한 믿음’이라는 전제에서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화폐다.

4.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면 화폐의 가치도 올라간다. 환율이 내려가는 것이다. 원화의 장기 추세는 정반대다. 서울경제신문이 창간된 1960년 미화 1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150원.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사망한 1979년은 450원이었다. 위환위기 직전인 1997년은 770원. 일본과 독일, 스위스는 물론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은 경제 발전에 따라 환율이 내려갔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마저 위안화 절상 압력을 받는다. 한국은 경제가 발전했음에도 통화의 가치가 떨어진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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