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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의 불황과 경쟁이 격화하면서 현대자동차의 전략에 변화의 기운이 엿보이고 있다. 글로벌 주요 시장 상품 구성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주력 무기였던 세단 판매가 뒷걸음질 치는 반면 SUV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동급 기준으로 세단보다 SUV의 수익률이 양호하다는 점에서 영업이익률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세단 대신 SUV로 체질 개선 나선 현대차=지난해 기아차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 판매량인 305만908대의 판매를 기록했다. 기아차의 실적 개선은 SUV 라인업 덕분이었다. 스포티지와 쏘렌토 및 카니발 등 비교적 수요가 많은 SUV 판매가 잘되면서 판매량을 경신했다.
현대차도 올해부터 세단 중심의 판매 라인업을 개선하고 전략 수정에 돌입했다. 현대차의 주 무기는 세단이었다. 미국에서는 엘란트라(아반떼)와 쏘나타가 가격 대비 성능비가 우수한 차로 평가 받으며 연 20만대 이상씩 꾸준히 판매돼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세단보다는 SUV 판매가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쏘나타 판매량은 1.6% 감소했지만 소형 SUV인 투싼은 34%, 싼타페는 9.4% 증가했다. 특히 싼타페는 2년 연속 10만대 판매를 돌파하며 현대차 성장의 한 축으로 부각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자 현대차 미국 법인은 기존 기아차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하던 연 10만대의 싼타페를 올 6월부터 앨라배마 공장에서 5만대 더 생산할 계획이다. 기존 세단 생산 물량을 줄이고 추가로 싼타페 물량을 늘려 기아차처럼 라인업 개편에 들어간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현대차에 유럽보다 더 큰 시장으로 평가 받는 인도 시장에서도 SUV 라인업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인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끈 소형 SUV 크레타를 올해부터 월 7,000대에서 1만대로 늘려 생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현대차는 인도 시장에 신형 투싼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최근 진행된 델리 모터쇼에서는 인도 시장만을 위한 SUV 콘셉트카 HND-14 칼리노를 선보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도 현지에서 크레타 성공을 목격한 후 장기적으로 크레타-투싼-칼리노로 이어지는 새로운 라인업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현대차는 러시아에서도 SUV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인도에서 인기를 끈 크레타를 올해 3·4분기부터 러시아 공장에서 본격 생산한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쏠라리스 생산 공장을 정비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에서 현대차 판매량(8,010대) 중 가장 인기 모델은 쏠라리스(5,626대)였지만 투싼(709대) 역시 의외로 선전하면서 SUV 시장의 성공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이밖에 체코 공장에서 생산해 유럽에 판매 중인 투싼이 역대 현대차가 공급한 신차 중 가장 판매 증가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생산 물량 확대 방안 등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UV로 판매·이익 동시에 늘린다=보통 SUV는 동급 세단에 비해 가격이 20~30% 정도 더 높다. 그래서 세단을 판매하는 것보다 SUV를 판매하면 영업이익이 더 많이 남는다. 보통 SUV는 동급 세단의 플랫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큰 투자 없이도 수익을 더 낼 수 있는 비결이다. 올해 유가 하락 및 중국 경기 둔화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SUV 라인업 다변화는 판매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을 예로 들자면 기아차 조지아 공장과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이 30~40분 거리에 위치해 싼타페 부품을 공유하기 쉽다"며 "큰 투자 없이 수익성이 더 좋은 SUV를 생산해 판매 물량을 늘리고 수익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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