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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동양 여인의 슬픈 향기

■ 어서 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 (E.B 폴라드 지음, 책읽는귀족 펴냄)

팔려 결혼하는 히브리인·'아이 생산 기계'라 여기는 인도

풍습·관례 속의 동양女… 100년 전 서양男 시선으로 조명

"지금 한국사회는 남녀차별 사라졌을까" 조용한 질문 던져

어서와 이런이야기는 처음이지

영화 '사도'엔 얄미운 후궁이 한 명 나온다. 충무로 신예 박소담이 연기한 '문소원'이란 캐릭터는 영조(송강호) 눈에 띄어 나인에서 후궁 자리에 오르고, 왕의 아이를 갖게 된 뒤엔 안하무인 건방을 떨며 내명부의 미움을 산다. 기고만장하던 그가 기죽은 채 찌그러지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출산 후다. 태어난 아이가 사도세자와 경쟁할 사내가 아닌, 아무 짝에 쓸모없는(?) 계집이었던 것. 남자 잘 만나 신분이 상승했다가 남자를 낳지 못해 뒷방으로 밀려난 문소원은 정도의 차이일 뿐 조선 시대 수많은 여인의 씁쓸한 삶을 보여준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과연 그럴까.

미국 침례교 목사이자 학자인 E.B 폴라드가 쓴 '어서 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는 기원전부터 역사 초기 시대, 근세에 이르기까지 동양에 살았던 다양한 문화권의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서양 남자의 시선으로 과거 동양 여성의 생활을 짚어본다는 설정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 책의 출간 시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100년 전 펴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강산이 열 번, 아니 요즘 같은 LTE급 시대엔 스무 번도 바뀌었을 시간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기간에 남녀차별은 사라졌을까. 멀리 가지 않고 한국 사회만 들여다봐도 '그렇다' 라고 단언하기가 망설여진다. 여성 국회의원이란 자가 '여성이 너무 똑똑한 척을 하면 밉상을 산다. 약간 좀 모자란 듯한 표정을 지으면 된다'고 말한다. 까다로운 사람으로 찍힐까 봐 공공연한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굳이 100년 전 이야기를 2016년 꺼내 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저자는 전설과 신화, 문화와 역사 속 수많은 일화를 소개하며 조선과 중국을 비롯한 동양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히브리인들에게는 아내를 얻으려면 돈이나 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중략) 아버지는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른 입찰자에게 노예 팔아넘기듯 딸을 구혼자에게 데려갔다. 이 결혼에서 여성 자신은 단지 부수적인 대상에 불과했다.'(51페이지), '인도에서 여성은 아이를 생산해야 하는 기계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며, 자녀 없이 죽은 남자의 영혼은 안식에 필요한 장례식을 치를 수 없었다.'(302페이지), '조선 여성들에게는 법적 지위가 거의 또는 전혀 없다. 여성들은 전적으로 남편의 권한 속에서 살아간다.'(517페이지)



600페이지가 넘는 책의 상당 부분은 풍습과 관례라는 굴레 속에서 혹독한 삶을 살아야 했던 여성의 척박한 삶이 담겨있다. 다만 저자가 일일이 동양 국가를 돌아다니며 관찰한 것이 아니라 역사서나 문학을 번역해 쓴 책이기에 수긍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예컨대 조선 여인의 삶을 소개하며 '조선의 법도는 너무 엄격하여 모르는 이가 손끝으로 여자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아버지가 딸자식을, 남편은 아내를 죽이기도 하며, 부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521페이지)라고 언급하는데, 이 부분은 실제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세상에 이런 일이'를 연발하며 그저 신기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래서 지금 내 삶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저절로 던지게 된다. 또 그러다 보면 사뭇 놀랍다. 동양 대다수 나라에서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여성 참정권과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역사가 채 100년도 안 되었다는 사실에. 2만 4,0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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