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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이 마이너스 금리 기조에 경고를 보냈다. 제로 이하의 금리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마이너스 금리를 지렛대로 삼아 경기를 부양하려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오히려 '제 발등을 찍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BIS는 6일 (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스위스·스웨덴·덴마크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의 여파가 아직 기업과 가계에 충분히 미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한 뒤 앞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거시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특히 개인과 금융기관이 마이너스 금리라는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반응할지 불확실하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BIS는 강조했다.
BIS의 경고대로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후 해당 국가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기준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졌음에도 일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금리와 부동산대출(모기지) 금리가 오히려 오르는가 하면 마이너스 금리에 실망해 은행에서 빠져나간 대규모 예금이 시중에 풀리지 않고 '장롱예금'으로 묶이는 등 당초 기대한 부양효과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올 들어 뒤늦게 마이너스 금리 대열에 합류한 일본의 경우 마이너스 금리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유독 큰 실정이다. 정책금리를 마이너스대로 낮추면 '와타나베 부인'으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 은행에 넣어뒀던 쌈짓돈을 주식시장으로 옮기면서 증시부양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일본 중앙은행(BOJ)의 예상과 달리 지난 한 달간 도쿄증시는 폭락세를 이어갔다. 지난 1월29일 마이너스 금리 정책 도입 당시 1만7,518.30이었던 닛케이225지수는 지난달 중순 1만5,000선이 무너졌다. 닛케이지수는 최근 반등세를 보이며 다소 회복되기는 했지만 7일 현재까지도 1만7,000선을 밑돌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는 자금도 겉으로 드러나는 규모보다 미미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CLSA증권의 브라이언 워터하우스 애널리스트는 수치상 마이너스 금리는 일부 시중은행이 BOJ에 예치한 10조엔에 적용되지만 그 가운데 8조엔은 대출이 허용되지 않는 일본우정의 예금이라 실물경제에 돈이 풀릴 여지가 없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지적했다. 금리를 낮춰 엔화가치를 떨어뜨리려는 노림수도 엇나갔다. 달러화 대비 엔화가치는 지난 한달 사이 7% 올라 오히려 BOJ의 정책 신뢰성만 갉아먹었다고 FT는 지적했다. 다수의 일본 언론은 마이너스 금리가 시작된 1월 이후 개인금고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며 '장롱 속 고액현금'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너스 금리가 은행권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마이너스 금리로 발생한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는데 정책금리가 플러스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은행권의 예대마진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장기부채 증가도 우려된다고 BIS는 설명했다. 시중은행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자본건전성도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마이너스 금리는 예대마진으로 수익을 내는 은행권의 전통적 사업모델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분위기에도 마이너스 금리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7일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마이너스 금리에 대해 "금리 인하 정책이 주가상승과 엔저에 힘을 싣고 있다"며 "개인이나 기업 전체로 보면 마이너스 금리의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추가 통화정책 완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오는 10일 통화정책회의를 여는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예금금리를 -0.4%로 0.10%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보인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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