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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상당수 기업들은 급변동하는 원자재 가격과 글로벌 경기 불안으로 올해 사업계획조차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대규모 투자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경영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투자를 미뤄서는 기업에 미래가 없다는 판단하에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로 선제적 투자에 대한 결단을 내렸다.
9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평택 반도체단지 등에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삼성은 오는 2018년까지 평택 반도체단지 건설에 15조6,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5월 착공한 평택 반도체공장은 부지면적이 축구장 400개 크기인 289만㎡에 달해 완공시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공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룹의 신성장동력인 바이오 분야 투자도 지속한다. 인천 송도에 2018년까지 8,500억원을 들여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친환경 및 스마트 차량 개발에 2018년까지 13조3,000억원을 투입한다. 이는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와 대형 정보기술(IT) 회사들이 스마트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상황에서 과감한 투자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장기 성장은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SK그룹은 올해만 SK하이닉스반도체 설비투자에 5조4,000억원, SK텔레콤 망 투자에 1조3,000억원, 브로드밴드 인프라 투자에 6,500억원 등 총 7조4,000억원을 쏟아붓는다.
박성운 SK하이닉스 사장은 "어려울수록 투자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며 "지난해 M14공장을 준공에 투자하면서 전체 투자 규모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SK이노베이션, SK E&S, SK가스 등이 배터리·발전소·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사업분야에서 크고 작은 신규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LG그룹도 대규모 투자를 지속한다. LG디스플레이가 파주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설 확장을 위해 2018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한다. 또 그룹 차원에서 마곡 사이언스파크에는 2020년까지 4조원을 투입해 국내 최대 융복합 연구단지를 조성한다. 단지가 완공되면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 등 계열사에서 총 2만여명이 넘는 연구개발(R&D) 인력이 근무할 예정이다. 또 그룹의 신사업 중 하나인 태양광 사업 투자도 이어진다. LG전자는 2018년까지 5,200억원을 투자해 경북 구미 태양광 셀 생산라인을 기존 8개에서 14개로 늘린다.
포스코는 2017년까지 포항제철소 3고로 개수에 4,200억원을, 광양제철소 설비 신설에 2,500억원을 각각 투자한다.
GS그룹은 올해 안에 동해전력에 1.2GW 규모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에는 모두 2조1,000억원이 투입된다. 이 밖에도 LNG복합발전소(당진 4호기) 건설을 위해 2014~2017년 7,500억원을 투자한다.
조선업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사들도 투자를 약속했다. 현대중공업은 콘덴세이트 정제 및 MX제조 프로젝트에 올해까지 1조2,000억원을 투자하고 신사업부지 확보를 위한 공유수면 매립공사 1,122억원을 쓴다. 대우조선해양도 해양플랜트 및 선박 설계에 필수적인 모형시업용 수조를 만들기 위해 서울대와 손잡고 950억원을 투자한다.
한화그룹은 올해 충북지역 태양광 공장 신증설을 위해 2,100억원을 투입하고 여수산업단지 염소 생산설비 증설에 1,2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한진그룹은 올해 2조4,000억원을 들여 A380등 항공기를 새로 도입한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4,470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복합쇼핑몰인 스타필드 하남을 완공하고 면세점 사업을 위해 2020년까지 2,700억원을 투자한다.
CJ그룹은 콘텐츠 사업을 위해 올해에만 6,7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같이 기업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투자는 지속한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에도 30대 그룹은 연초에 125조9,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투자금액은 116조6,000억원(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매입액 제외)으로 당초 목표의 92.6%에 그쳤다. 10조원에 달하는 금액은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올해는 계획대로 투자를 실행할 수 있게끔 투자 인센티브 및 규제 완화 등이 절실하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이날 주형환 산업통장자원부 장관과 30대 그룹의 간담회 자리에서도 30대 그룹 관계자들은 신사업 창출을 위한 지원과 금융·세제·재정 지원을 요청했다. 3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은 R&D 투자에 대해 세액공제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 같은 추세에 역행하며 오히려 지금 지원을 축소하고 있다"며 "원천기술 개발 R&D 세액공제를 늘리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또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신사업 시장이 창출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 예컨대 무인기 및 신재생에너지 사용 확산 등에 공공기관이 솔선수범을 보인다면 시장 규모가 커져 국내 기업들이 사업기회가 넓어질 것이라는 제안이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교역량이 지난해 처음으로 감소하는 등 대내외 경영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서도 올해 30대 그룹이 투자를 늘리기로 한 것은 선제적인 투자로 성장동력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이혜진·김현진기자 has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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