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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정 큐레이터의 Art-B] 트레비분수가 부러운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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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정 아트에이젼시 더 트리니티 대표

지난해 여름 휴가도 없이 일에 쫓겨 바쁜 와중에 유럽으로 놀러 간 친한 언니가 카톡으로 사진 폭탄을 떨어뜨렸다. 부러움에 열까 말까 고민하다가 언니의 기대에 찬 얼굴이 떠올라 결국 일을 멈추고 들여다봤다. 웬걸 예상했던 사진이 아니었다. 로마의 명물, 트레비분수는 물을 뿜기는커녕 마른 바닥을 드러낸 채 작업도구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말 그대로 공사판이었다. 사진 속 주변 관광객들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세계적 관광 명소의 아우라를 기대하고 찾아왔는데 공사판이라니 얼마나 황당했을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언니의 불평이 쏟아졌다.

그맘때 로마를 찾았던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로마 제국의 정수를 담은 문화재 콜로세움도 보수복원 공사로 내부 입장이 제한되는 것은 물론, 거대한 펜스들로 인해 외관 구경도 힘들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젤라또를 먹었던 장소로 잘 알려진 스페인 광장 계단 또한 공사 중이었다. 로마의 여름은 살인 더위로 악명이 높다. 콜로세움 앞은 항상 전세계 관광객들의 긴 줄이 늘어서 있는데, 그 살인 더위를 이겨내야 입장할 수 있다. 각오를 다지고 콜로세움을 찾은 사람들의 허탈감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로마의 명소를 찾은 관광객들이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보수 현장 곳곳에서 펜디, 토즈, 불가리 등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를 봤다. 문화재 보존과 복원 사업에 팔을 걷고 나선 곳이 이탈리아 정부가 아닌 이들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문화재 보존이란 당연히 정부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깜짝 놀랄 일이다.

트레비분수 보수에 나선 것은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인 펜디다. 그동안 로마에서 받은 문화적, 예술적 영감과 사랑을 되돌려주고자 지원했다고 한다. 펜디가 트레비분수에 들인 돈은 300만 달러 정도다. 하지만 펜디는 액수로 따지기 힘든 이득을 봤다. 트레비 분수를 둘러싼 공사용 투명가림막에는 펜디의 검은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펜디는 이로 인해 자사 브랜드의 뿌리가 로마 문화의 정통성과 함께한다는 인식을 관광객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는 트레비 복원에 맞춰 분수를 촬영한 '글로리 오브 워터' 사진집을 발표했고, 백도 출시 했다. 관광객만이 아니라 고객들 전체를 상대로 작업에 나선 것이다.



콜로세움은 토즈가 무려 3년 동안이나 홍보 효과를 누렸다. 로고가 들어간 초대형 현수막이 들어섰고 콜로세움 이미지의 독점 사용권을 얻었다. 입장권에도 토즈 로고가 들어가기로 했다. 오랜시간 투자한 만큼 들어가는 돈은 3360만 달러나 된다. 하지만 토즈의 이득이 그 이상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스페인 광장 계단을 고른 불가리는 무척 노골적이었다. 불가리는 200만 달러를 로마시에 기증하고는 대형 현수막을 꽉 채운 거대한 불가리 로고로 스페인 광장이 아닌 불가리 광장을 만들었고, 아예 자사 목걸이 제품 이미지를 나열한 펜스를 등장 시켰다. 현수막과 펜스를 광고판으로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로마 문화의 정통을 이었다는 효과를 얻은 것이니 세 명품 브랜드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은 그야말로 성공적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들의 이 같은 활동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탈리아가 근대 서구 문화의 뿌리라고 하지만 우리의 5000년 문화유산도 그에 못지 않다. 하지만 받는 대우는 이탈리아와 비교가 안된다. 팔만대장경의 경우 디지털 복원작업에 스님 한 분이 홀로 35년 동안 고독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펜디와 같은 기업이 한국에도 있었다면 팔만대장경은 디지털 복원작업으로 완전하게 되살아나고 기업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얻었을지 모른다. 팔만대장경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트레비분수가 무척 부러웠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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