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산업연구원장은 태평양 연안의 12개국이 지난 2월 협정문에 공식 서명한 TPP의 파괴력이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일본·베트남에 더해 캐나다·멕시코·호주 등 12개국이 관세를 철폐한 메가 FTA(자유무역협정)인 TPP는 기존 FTA에 없던 누적원산지라는 개념을 채택했다. 완제품 구성 가운데 12개 회원국에서 조달한 부품이 일정비율 이상이면 이 제품은 모든 회원국에서 관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TPP가 발효되면 ‘한·일 중간재 생산 → 중국 완제품 → 대미 수출’이라는 글로벌 밸류체인(GVC)이 ‘일 중간재 생산 →베트남 완제품 → 대미 수출’ 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TPP가 발표되면 12개 회원국에서 누적원산지 혜택을 받는 일본보다 소재·부품·자동차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김 원장은 “국내에서 높은 인건비를 감당하면서 글로벌 경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해외 진출은 불가피하다”며 “우리가 좀 더 (TPP 가입을 위해) 일찍 움직였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이제 일본에서 생산한 제품을 베트남에서 조립하면 ‘Made in TPP’가 돼 수출된다. TPP 회원국들의 GVC 구축으로 글로벌 분업체계가 요동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 만큼 우리의 TPP 가입은 필연이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TPP 가입을 계산할 때 우리는 국내총생산(GDP)이 얼마나 늘고 무역수지가 어떻게 된다는 등 이익을 계산하지만 이보다 우리가 TPP 바깥에 있을 때의 손해, 즉 GVC 밖에서 받는 유무형의 불이익과 일본 등 경쟁국이 얻는 이익 등도 따져봐야 한다”며 “TPP 미가입에 따른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
반면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미래는 어둡게 봤다. 김 원장은 “중국이 참여하는 RCEP의 경우 일본의 견제를 받아 내용 없는 정치적 형태로 타결되든지 아니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며 “일본이 호락호락하게 중국을 밸류체인 안에 넣어 주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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