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결국 청와대의 의중이 개헌의 실현 여부를 결정 짓는 ‘핵심 키(key)’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재 청와대는 개헌에 부정적인 인식을 나타내고 있지만 차기 대선 국면에서 여권 후보가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실패할 경우 청와대가 ‘개헌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헌법학자 출신인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은 1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돌입하면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개헌이 힘들어질 것”이라며 “연말 전에 개헌해 새 헌법으로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고 나선 것이다. 개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청와대·친박계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개헌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2(200석) 이상이 찬성해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한다면 ‘개헌선’ 확보가 여의치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는 개헌 논의가 모든 민생·경제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 탓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이날 “범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여의도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하는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며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정치인들이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 것 역시 청와대의 의중을 감안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취임 기자간담회를 열고 “개헌은 이제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20대 국회 전반기에 이 문제가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개헌 의지에 쐐기를 박고 나섰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서서히 무르익으면서 여권 내에 유력한 대선 후보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청와대·친박계 역시 ‘권력 분점’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종섭 의원을 비롯한 친박계가 ‘개헌 군불 때기’에 나선 상황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친박 좌장인 최경환 의원 역시 지난해 11월 경제부총리 당시 한 행사장에서 “최근 20년 이상은 5년 단임 정부다. 그러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지속성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어떻게 하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부분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밝힌 바 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날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총선 참패 이후 이미 레임덕에 돌입한 청와대가 종국에는 ‘개헌 없이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다’는 인식에 도달할 것”이라며 “이 경우 내년 대선 전에 국민투표가 이뤄지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나윤석·박형윤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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