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전공한 청년예술가들과 서울 종로구 창신동 봉제공장 골목. 공통점이 전혀 없을 것 같지만 협업하며 살아가는 공생관계다. 사회적기업 ‘공공공간(OOO간)’ 홍성재(33·사진) 대표와 청년예술가들은 봉제 골목에서 잔뼈가 굵은 장인들과 손잡고 패션의류 등을 기획·판매한다. 홍 대표는 이 협업이 곧 일감 공유이며 지역 재생이라고 강조한다.
홍 대표는 최근 경기 성남시 판교 경기콘텐츠코리아랩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지방행정체험’ 강연에서 “청년들의 아이디어와 디자인으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며 “편견을 깨는 것도 청년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외된 산업지역처럼 편견에 묻힌 공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예술가로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익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홍 대표도 여느 아티스트들처럼 작품과 전시로 명성을 얻는 예술가를 꿈꿨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과 현실의 괴리에 부딪혀 낙담하던 차에 한 기업의 메세나(문화예술 후원사업) 프로그램을 통해 창신동 지역아동센터와 연을 맺었다. 동대문의류시장의 배후지로 2,500여개의 소규모 봉제공장이 밀집된 창신동 봉제 골목은 해외 중저가 의류 브랜드의 인기로 과거에 비해 일감이 크게 줄었다. 쇠퇴하는 골목길의 한 허름한 공간을 개조해 아이들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첫 프로젝트였다. 홍 대표와 청년들은 지난 2012년 협업사업을 위한 ‘공공공간’도 세웠다.
그는 “쓰고 남은 자투리 천 등을 담은 쓰레기더미가 동네의 골칫거리였다”며 “동네 봉제 종사자들의 관심과 협업을 이끌기 위해 시작한 패션사업도 이런 문제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공공공간이 패션 디자인을 맡아 하루 20톤 넘게 나오는 자투리를 원단의 5% 이하로 줄이고 봉제공장이 수익은 더 많이 가져가게 하는 협업이 이뤄졌다. 이른바 ‘버리는 것 없는(zero waste)’ 셔츠, 앞치마, 가방 등이 젊은 층 인기를 끌어 일부 대형 백화점 매장에 판매되고 있다.
연초 오픈한 카카오의 주문생산 플랫폼에도 새 판로가 열렸다. 6개월간 공들여 제작해 카카오에서 처음 판매된 젊은 여성층을 겨냥한 담요는 지금껏 3,000여개나 팔렸다. 홍 대표는 “소비자들이 실시간 원하는 제품을 제공하는 판매방식으로 카카오는 재고비용을 줄이고 공공공간은 봉제 종사자들과 일감을 공유하는 효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공공공간은 다음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리빙디자인 박람회인 메종&오브제에 첫 참가기회를 얻었다. 홍 대표는 “협업제품들이 세계 바이어들에게 제대로 소개될 수 있도록 전시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편견을 깨면 그것이 곧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편견의 대상인 공간, 지역일지라도 자생적 생산능력을 갖추면 외부 자원 없이도 자체 생산을 통해 자립할 수 있다”며 “이것이 공생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졸업 후 진로고민의 경험을 소개하며 “사회가 바뀌길 기대하기 전에 자신부터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의 창업 초기를 ‘회사놀이’에 불과했다고 비유한 홍 대표는 “어떤 삶이 가치 있는지를 고민하고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을 모으면 그것이 커져 브랜드가 된다”며 “창업은 꼭 시작해야겠다는 당위성 때문이 아니라 어려움과 시련을 겪으며 변화가 쌓이면서 자연스레 시작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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