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는 ‘후진국형 전염병’이라 불린다.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저개발국에서는 해마다 3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 10만명 이상이 죽고 있다.
원인과 해결책을 몰랐던 옛날 사람들에겐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인류는 새로운 바이러스와 세균이 등장할 때마다 수 많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백신과 공중보건이 발달하기 시작했던 19세기 이전에는 전염병이 돌면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최근 200년간 인간은 항생제와 백신을 개발하며 전염병과 끊임 없이 사투를 벌여왔다. 그 결과 평균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100년 전 40세 가량이었던 인간의 평균수명은 지금은 70세를 넘겼다. 2015년 기준 71.4세를 기록했다. 전염병과의 200년 전쟁 역사는 인간의 승리와 패배의 기록이다. 주요 전염병과의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자.
콜레라는 원래 인도의 벵갈 지방에 유행하던 풍토병이다. 사람들의 이주와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 페르시아, 터키, 폴란드 등에 이어 1830년대엔 이집트, 영국, 캐나다, 미국, 멕시코까지 퍼졌다. 콜레라는 1879년께 일본으로부터 한국에 전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에 콜레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병의 정체를 알 수 없어 ‘괴질(怪疾)’이라고 불렀다.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 내는 것처럼 아프다고 하여 ‘호열자(虎列刺)’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콜레라는 콜레라균(Vibrio cholerae)에 감염된 환자의 대변이나 구토물에 오염된 음식물이나 식수를 먹어서 전파된다. 쌀뜨물 같이 묽은 설사와 구토를 하다가 급속한 탈수 증상으로 심하면 사망까지 할 수 있어 1군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돼 있다. 콜레라 균은 바닷물에서도 살 수 있어 균에 오염된 해산물을 날 것이나 설 익혀 먹으면 감염될 수 있다. 수액 주입으로 손실된 수분을 공급하고 체내 전해질 불균형을 교정하는 것이 주된 치료 방법이다. 콜레라를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률은 50% 이상이지만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면 사망률은 1% 이하로 떨어진다.
천연두는 인류에게 큰 절망과 자신감을 동시에 안겨준 전염병이다. 천연두는 최소 3억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인류가 최초로 완벽하게 정복한 전염병이기도 하다.
기원전 1,157년에 사망한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도 천연두 흔적이 남아 있다. 전염병의 ‘원조’ 라고 할 수 있는 천연두는 이집트에서 인도, 중국을 거친 뒤 전 세계로 퍼지며 3,000년 이상 인류를 괴롭혔다. ‘신대륙’ 아메리카 주민들은 생전 처음 겪는 천연두가 생물학적 테러에 가까웠다. 1518년 유행한 천연두는 전염력이 워낙 강했다. 스페인의 침입 이전 아메리카의 인구는 대략 1억 여 명이었으나 이 중 90% 이상이 천연두 때문에 숨졌다.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이 병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면역력이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천연두는 온몸에 피부 발진과 함께 고열이 나다가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감염병이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후기에 창궐하여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2주를 버티면 회복됐지만 대부분은 그 전에 사망했고, 낫더라도 흉한 곰보 자국이 남았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도 천연두가 크게 유행해 1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하지만 인류는 이제 천연두를 완전히 정복했다.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Jenner. E.)는 소의 젖을 짜는 사람들이 소 천연두(우두)에 감염되면 그 후에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두가 인간에게는 거의 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우두에 감염된 여성의 고름을 건강한 소년에게 상처를 내고 이식하였다. 2개월 후에 소년에게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이식했으나 소년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이것이 1796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200년 후인 1980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공식 발표했다. 3년 전인 77년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환자가 발견됐다. 국내에서는 1960년 세 명이 이 병에 걸린 것을 끝으로 환자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
인류가 천연두를 정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이러스가 돌연변이 하지 않는 고유한 특성 때문이다. 때문에 독감 바이러스 등과 달리 오직 한가지 균주에 대한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했다. 백신이라는 단어는 우두의 라틴어(Variolae Vaccinae)에서 나왔다.
기원전 7,000년경의 신석기 화석에도 감염 흔적이 남아 있는 결핵은 10억명을 사망케 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 질환이다. 인도에선 기원전 1,000년경, 중국에선 수나라 때 결핵에 대한 기록이 있었지만 대규모 창궐은 유럽에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된 19세기에 이르러서다. 1882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버트 코흐(Robert Koch)가 결핵의 병원체인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발견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객혈을 토하며 죽는 결핵은 당시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은 ‘결핵의 세기’라 불러도 될 만큼 지구상에 결핵이 만연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은 ‘결핵 공화국’이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 영양 상태, 주거 환경이 주된 원인이었다. 1954년에는 하루 평균 300명이 결핵으로 숨졌다. 결핵은 대표적인 ‘후진국형 질병’이지만, 한국은 2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결핵 발생률·유병률·사망률 모두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8월 초에도 서울의 몇몇 병원에서 의료진이 결핵에 감염되는 등, 한국에서 결핵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인간이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아직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종류가 몇 가지 있다.
1980년대 등장한 후천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은 ‘제2의 천연두’가 돼 지금도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에이즈는 약 30년 동안 3,9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에이즈가 유독 정복이 어려운 이유는 에이즈 바이러스(HIV)의 특성 때문이다. HIV는 숙주의 면역세포를 감염시킨 뒤 자신의 유전 정보를 세포의 유전자(DNA)에 심어 숙주 세포가 스스로 바이러스를 복제하게 만드는 전략을 쓴다. 우리 몸에 있는 면역세포인 CD4 양성 T-림프구가 이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어 파괴되므로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고, 그 결과 각종 감염성 질환과 종양이 발생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을 차단하기가 쉽지 않다. 평균 10년 안팎의 잠복 기간 동안 체액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시킬 위험이 있다.
1983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몽따니에 박사가 HIV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HIV는 매우 쉽게 변이되기 때문에 치료제 개발이 어렵다. 하지만 지금 전세계 과학자들이 HIV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면서 비록 바이러스 자체를 박멸하지는 못하지만 병을 적절하게 억제 관리하는 수준까지 왔다. HIV에 감염되었어도 치료를 잘 받으면 생존 기간을 연장할 수 있어,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바뀌었다.
20세기 들어 세균학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뜻 밖의 복병을 만났다. 독감이었다. 1918 년부터 2년 동안 스페인 독감이 지구촌을 휩쓸면서 2,500만∼5,000만명이 목숨을 앗아갔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740만명이 감염돼 14만 명이 숨졌다. 스페인독감은 1차 대전 때 프랑스 전선의 미국의 병영에서 첫 발생했으며 병사들의 이동에 따라 세계로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 언론에서 이를 적극 보도해 스페인이 최대 피해국처럼 알려져, 스페인독감이라고 이름 붙었다. 2005년 연구팀이 미국 알래스카에 매장된 여성 독감 환자 시신에서 추출한 독감 바이러스의 염기 서열을 분석해서 H1N1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는 최근 100년간 가장 골치 아픈 전염병으로 꼽힌다.
독감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것은 카멜레온처럼 모습을 자꾸 바꿔 변종을 만들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크게 A, B, C 3가지가 있는데, 대유행을 일으킨 독감 바이러스는 모두 A형이다.
A형 인플루엔자는 적혈구응집소(H)와 뉴라민가수분해효소(N)라는 두 가지 단백질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된다. H와 N의 종류는 각각 16개와 9개가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는 H1N1이며 아시아독감은 H2N2, 홍콩독감은 H3N2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불리는 H5N1 바이러스는 2003년 말부터 현재까지 648명이 감염돼 그 중 384명이 사망, 치사율이 무려 68%에 달한다.
백신과 의료 기술의 발달로 전염병의 치사율은 크게 낮아졌다. 하지만 파급력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전염병의 피해가 가장 큰 분야는 경제다. 전염병이 퍼지면 사람들은 공공장소를 기피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소비가 위축된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를 겪은 우리나라는 심각한 내수 침체에 빠진 바 있다. 전염병과 함께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면 각종 음모론도 고개를 든다. 지난해에도 메르스가 미군 소행이라는 괴담이 떠돌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매년 전염병과 마주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메르스에 이어, 올해는 콜레라와 C형 간염 집단 감염까지 발생했다. 전염병 감염 경로에 인간의 활동이 개입된 경우가 많다. C형 간염의 집단 감염은 주사기 재사용 때문으로 의심된다. 최근 급격한 산업화로 쓰레기가 늘면서 도시 위생이 더러워지고 자원 개발로 숲이 파괴되면서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늘어 새로운 전염병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최근 남미에서 유행하는 지카 바이러스처럼 앞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전염병이 출현할 것이다. 매우 강력한 전염병이 창궐할 수도 있다. 과연 인류는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문병도기자 d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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