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주의 부진이 3년 넘게 이어진 적이 없는데 2014년부터 2년 반을 고생했습니다. 지금 마지막 고비를 넘고 있습니다.” 증권가에서 ‘가치주 전도사’로 불리는 이채원(사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의 이야기다. 지난해 중소형주·성장주에 이어 올해 대형주 중심의 장세가 이어지면서 가치주 펀드의 수익률은 뚝뚝 떨어졌다. 연말 이후 수익률 회복을 기대하지만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가치주는 기업의 성장률보다 현재 주가가 저평가된 종목들을 말한다. 가치주 펀드는 이렇게 저평가된 종목에 장기 투자해 수익을 낸다.
21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9일까지 가치주 펀드(설정액 10억원 이상 총 211개)의 평균 수익률은 -4.22%를 기록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1.58%)보다 못한 성과다. 같은 기간 동안 ‘한국투자거꾸로’가 3.41%로 그나마 선방한 가운데 ‘한국밸류10년투자밸런스’ 등 31개의 펀드는 1%대의 수익률에 만족해야 했다. 나머지 180개 펀드는 은행 금리만도 못한 실적을 기록했거나 마이너스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가치주 펀드매니저들은 “가치주와는 동떨어진 장세가 이어진 탓”이라고 분석한다. 지난해에는 바이오·제약주 중심의 중소형·성장주가, 올 들어서는 삼성전자·네이버 등 대형주가 장을 이끌면서 가치주가 소외됐고 펀드 수익률도 변변치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초 이후 ‘메리츠코리아’ ‘미래에셋가치주포커스’ 등의 수익률은 각각 -17%대, -9%대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반전의 기미를 포착하고 있다. 금리 인상기에는 성장주보다 가치주가 시장을 주도한다는 이유에서다. 미래 기대수익이 주가에 반영된 성장주는 금리가 상승할 때 할인율이 높아지면서 가치가 떨어지고 반대로 가치주는 투자 매력이 높아지게 된다. 신영마라톤 펀드를 운용하는 김대환 신영자산운용 마라톤가치본부장은 “성장주는 경기가 불투명할 때, 금리 하락기에 주목을 받지만 최근에는 이로 인한 프리미엄이 너무 높아졌고 미국 금리 인상도 예정돼 있다”며 “그동안 소외됐던 가치주의 가격 메리트가 돋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채원 부사장 역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높지만 주가가 저평가된 종목들이 부상하게 될 것”이라며 반전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가치주펀드의 부진이 3년을 넘기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르면 연말부터 가치주펀드에 우호적인 환경이 되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밖에 대형 가치주를 중심으로 이익·부채비율 개선 등의 조짐도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민수아 삼성자산운용 밸류주식운용본부장은 “대형 가치주가 최근 3, 4년간 이익 감소, 부채 증가로 주가가 빠졌지만 올 들어 개선되는 모습”이라며 “다만 이 같은 ‘정상화’ 단계에서 더 나아가 업황 자체가 좋아지려면 경기회복 등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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