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연계증권(ELS) 등 파생결합증권 건전화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금융당국이 은행·증권사의 강력한 반발로 규제 수위를 기존 검토안보다 낮추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시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모양새지만 불완전판매 논란을 잠재울 한 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9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다음달 중 파생결합증권의 판매와 관리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건전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금융투자협회 관계자들이 참여한 태스크포스(TF)의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제도 개선안을 조율하고 있다. TF는 최근 공식 활동을 마무리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와 올해 초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폭락으로 이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상당수 국내 ELS가 원금손실 구간에 접어드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자 고위험 ELS에서 상장지수펀드(ETF) 등 비교적 구조가 투명한 상품을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제시한 상태다.
우선 금융위는 72조원(6월 말 기준) 규모로 성장한 ELS를 금융사가 판매할 때 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도록 할 방침이다. 특히 원금이 보장되는 예적금 고객이 대부분인 은행에서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인 ELS를 판매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검토 초기 단계에서는 은행 ELS 판매를 아예 제한하는 아이디어도 제시됐으나 법적 충돌 문제와 전국은행연합회 등의 강력한 반발로 채택되지 못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미 오랜 기간 은행에서 취급된 상품의 판매를 갑자기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검토되는 대안은 부적합 확인서 발행 제도 폐지다. 부적합 확인서는 고객이 본인의 투자성향과 맞지 않는 상품에 투자할 때 금융사가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종의 면죄부다. 발행이 금지되면 안정추구형 판정을 받은 고객이 초고위험·고위험 상품으로 분류되는 ELS에 원칙적으로는 가입할 수 없다. 이를 알고도 고객이 투자를 원한다면 판매 금융사 준법감시인 등의 승인을 거쳐야 판매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절차를 추가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계획이다.
또한 금융위는 ELS의 금융사 판매보수를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은행 등 금융사에서는 투자상품을 판매하고 수수료를 떼는데 수익구조가 복잡하고 손실위험이 클수록 판매보수도 높아진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더 위험한 ELS 상품을 소개할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품의 수익이 났을 때 금융사가 고객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는 운용보수 체계로 전환하는 방안까지 TF에서 논의됐다.
아울러 증권사가 ELS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더 상세하게 공시하도록 한 제도개선안도 건전화 방안에 담길 예정이다. 증권사가 ELS 상품의 헤지(위험회피)를 위해 주식·채권·파생상품 등에 투자할 때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꼬리표’를 붙이는 셈이다. 이에 따라 헤지 자산 규모·목록과 손익 등이 분기별로 나오는 ELS 업무보고서에 명시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금융위는 증권사가 ELS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을 신탁계정으로 떼어내 관리해서 투자자의 위험을 줄여주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금융투자 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도입을 보류하기로 했다. ELS 조달자금이 신탁계정에서 관리되면 증권사에 신용 문제가 발생해도 투자자가 선순위 수익권을 갖게 돼 투자 위험이 줄어드는 정책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신탁계정을 활용하는 방안을 중장기적으로라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최종 발표안에 담을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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