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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와치] 타악기, 짧지만 강한 울림...오케스트라 뒤에서 曲의 절정을 두드리다

알수록 매력적인 타악기의 세계

'때리고 흔들고 문지르고' 다양한 주법

빈병·빨래판·철판서 자동차 휠까지 사용

악기 직접 만들고 여러종류 다룰 줄 알아야

짧은 시간 등장하지만 박자·리듬이 핵심

현대 음악일수록 타악이 전면에 서기도

빨래판, 주방용 도마, 거대 망치, 빈 병, 수도 파이프….

집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들이 아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들 모두 ‘아름다운 선율’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엄연한 ‘악기’다. 오케스트라의 맨 뒤에 서 짧고 굵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퍼커셔니스트(타악기연주자)들은 다양한 도구를 악기 삼아 바람·새소리부터 천둥의 울림까지 새로운 음(音)을 만들어낸다. 두드릴수록 열리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오케스트라 타악기의 세계를 서울시립교향악단 에드워드 최 타악기 수석, 김미연 단원과 함께 들여다봤다.

서울시향이 17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존 액설로드의 알프스 교향곡’ 연주회 장면. 무대 맨 뒤쪽에 타악기가 편성돼 있다.




서울시향의 ‘존 액설로드의 알프스 교향곡’ 연주회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김미연(왼쪽) 단원과 에드워드 최 타악기 수석.


지난 17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존 액설로드의 알프스 교향곡’ 연주회 무대에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물체가 있었다. 철봉에 매달린 얇은 양철판은 클래식 공연장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시종일관 무대 배경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이 철판은 공연 종료 10분을 남기고 존재감을 발휘했다. 연주자가 철판을 흔들자 웅장한 천둥소리가 무대를 휘감았다. 절정의 순간 등장한 이것은 선더시트(thunder sheet). 서울시향이 청계천 철물점에서 직접 소재를 구해다 만든 악기다.

김미연 서울시향 단원이 17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존 액설로드의 알프스 교향곡’ 연주회에서 천둥소리를 내는 악기 ‘선더시트’를 연주하고 있다.


◇‘쾅’ 하고 치면 끝?=‘타악기’ 하면 많은 이들이 ‘두드린다’ ‘친다’라는 동사를 떠올리곤 한다. 당장 머리에 그려지는 것도 북·드럼·심벌즈 정도다. 이는 넓고 깊은 타악의 세계를 아주 일부만 아는 것이다. 타악기 소리는 ‘때리고’ ‘긁고’ ‘흔들고’ ‘문지르는’ 모든 소리를 아우른다. 여기에 들어가는 악기만 해도 드럼, 귀로(빨래판 모양의 악기), 마라카스, 탬버린, 팀파니, 차임, 비브라폰 등 다양하다. 최 수석은 “현대에 와서는 연주 영역과 기법이 확대돼 종이를 찢거나 건반악기를 현으로 긁는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순간을 위해 집중하고 기다린다=‘잠깐 등장해 큰 소리를 낸 뒤 긴 시간 동안 하는 일이 없다’는 것도 타악주자들이 자주 맞닥뜨리는 선입견이다. 물론 ‘짧고 굵은 등장’이 사실이기는 하다. 김 단원은 “30분 이상 그냥 앉아 있을 때도 있다”며 “타악기가 많이 나오는데도 쉬는 부분이 긴 작품이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딴생각에 빠질 틈은 없다. 그는 “박자·리듬이 무엇보다 중요한 파트인 만큼 계속 곡의 흐름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모든 타악기연주자는 마림바나 실로폰·벨 등 선율 타악기부터 팀파니·작은북·심벌즈·탬버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악기를 훈련한다. 오케스트라 타악 오디션에서도 최소 5~6가지를 다뤄야 한다고. “지정곡을 주고 악기를 연주하게 해요. 누가 일정하게 리듬을 맞춰 악기를 다룰 수 있는지 보는 것이죠. 악기당 지정곡이 3~4곡인데 40여 곡을 준비해 6~7곡가량 시험을 봅니다(최).” 오케스트라에서는 주로 담당하는 악기가 있지만 필요에 따라 공연에서 2개 이상을 다루기도 한다. 전문 분야가 있어도 결국 모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훈련돼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번 ‘알프스 교향곡’ 공연에서 카우벨을 맡은 김미연 단원은 마림바 솔로 활동으로도 유명한 연주가다.

‘귀로’는 울퉁불퉁한 면을 나무 막대로 긁어 소리를 낸다.


빨래판처럼 생긴 단면을 긁어 소리를 내는 악기로 이름도 빨래판이란 뜻의 ‘워시보드’다.


서울시향 창고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병과 파이프.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유리병·휴지통·파이프·와인잔 등도 타악기로 활용한다.


◇이런 것도 악기라고?=무엇이든 연주 도구가 되는 분야가 바로 타악이다. 서울시향 악기창고에는 공장에서나 볼 법한 긴 철골 기둥이 매달린 장비(?)가 있다. 이름 하여 베이스차임. 종소리를 내는 이 악기의 높이는 무려 3m. 단 위에 사다리를 얹고 올라가 작은 망치로 두들겨 소리를 내야 한다.

바람 소리를 낼 때 쓰는 ‘윈드머신(왼쪽)’과 공연 중 윈드머신을 연주하는 에드워드 최 타악기 수석.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키호테나 알프스 교향곡에 등장하는 ‘바람 소리’는 ‘윈드머신’이라는 독특한 외양의 악기가 만들어낸다. 천으로 감싼 원통을 손잡이로 잡고 돌릴 때 신기하게도 ‘쌩~’하는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일상의 소재는 좋은 타악기 재료다. 지휘자가 원하는 음색을 만들기 위해 두께와 모양 다른 와인병 수십 개를 가져다가 음색을 테스트한 뒤 공연에 사용하기도 한다고. 도마·쓰레기통·자동차바퀴는 기본이다. 최근 중국 영화음악가 탄둔의 ‘무협영화 3부작 콘서트’ 때는 처마에서 물 떨어지는 음향을 표현하기 위해 물 담은 볼에 손을 넣어 소리를 만들어냈다.

서울시향은 지난 2011년 말러 6번 교향곡 연주를 위해 큰 나무망치를 특수 제작한 바 있다. 4악장 ‘영웅에게 가해지는 세 번의 타격’은 거대한 나무망치가 소리를 만들어냈다.


없을 때 만드는 것도 타악기 연주자들의 역할. 말러 6번에 나오는 대형 나무 해머, 스위스 소방울로 만든 카우벨도 작곡가의 음악적 의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서울시향에서 특수 제작했다. 김 단원은 “오케스트라 연주회 하면 형식적이고 고전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타악기의 경우 그런 형식을 다 깨고 자유로운 매력을 자주 보여주는 것 같다”며 “청각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다채로워서 관객이 신기해하며 더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악보 위에는 ‘카우벨’ 악기 명칭만 적혀 있지만(왼쪽) 연주자는 지휘자의 요구와 작품 분위기에 맞게 다양한 소리를 연구해야 한다. 각기 다른 소리를 만들기 위해 카우벨 안에 나무나 쇠막대·테이프 등 다양한 소재를 넣었다.


음정 없는 타악기는 악보에 악기 이름과 주법 정도만 표시돼 있다. 지휘자와 상의해 작품에 걸맞은 음색을 찾고 만들어내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다. 이번 알프스 교향곡 공연에서 카우벨의 경우 벨 내부에 나무·쇠막대·플라스틱 등을 클래퍼로 달아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야 했다. 쇠막대도 테이프를 감아 좀 더 부드러운 소리를 만드는 등 연주자 개인의 노하우가 반영됐다.

현대로 올수록 타악기가 돋보이는 다양한 실내악 작품이 작곡되고 있다. 오케스트라 맨뒤에 섰던 타악기가 무대 전면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공연도 늘어나고 있다.


◇타악이 전면으로, 특별한 음악들=주로 무대 뒤를 책임지는 타악주자들이 전면으로 나서는 공연도 있다. 서울시향은 지난해 12월 아드리앵 페리숑, 에드워드 최, 김문홍, 김미연 등 시향 퍼커션 그룹을 중심으로 ‘비바 퍼커션’ 공연을 열었다. 당시 첫 곡은 에드가르 바레즈의 ‘이온화’였다. 6명의 연주자가 37개의 타악기로 선보인 이 곡은 멜로디와 화음이 제거되고 사이렌 소리 같은 우연성 소음을 넣어 색다른 무대를 선사했다. 이 밖에 올리비에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 말러 교향곡,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을 비롯해 서울시향에서 진행하는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노바 등에서 타악기의 매력을 느껴볼 수 있다.

“과거에는 타악기를 ‘중요한 순간에 역할을 하는’ 오케스트라의 골키퍼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제 말을 좀 바꿔야겠네요. 현대음악으로 올수록 우리가 앞에서 이끌어야 하는 스트라이커의 역할도 많이 하거든요(김).” “간단해 보이지만 타악기 연주에 필요한 테크닉은 엄청나죠.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타악기의 매력에 한번 빠져보세요(최).” 알수록 친근한 타악기의 세계, 이제 당신이 두드릴 차례다.

/송주희기자 sson g@sedaily.com 사진제공=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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