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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약약강'에 대한 새로운 정의 필요하다

이상민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행정심판)





지난 5월, 횡단보도 보행 중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형을 떠나보낸 유족의 간절한 사연이 중앙행정심판위원회로 전해졌다.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과 황망함을 가슴에 안고 고인의 사망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구급차 블랙박스 영상을 전자파일로 공개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마저도 거부당한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정보공개법·개인정보보호법 등 법률적인 검토는 물론 공개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적정했었는지 등을 두루 살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고, 넉 달여가 지난 뒤에야 형의 사망 정황을 담은 영상파일이 유족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

이 사건과 같이 개개인의 가슴 아픈 사연이 고스란히 담긴 행정심판 사건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만 한 해에도 2만5천여건이나 접수된다. 부당함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행정심판 사건을 마주할 때면 ‘강약약강’이라는 신조어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 또는 행위’를 일컫는 이 줄임말에는 권력의 격차가 나날이 커져 가는 우리 세태에 대한 자조와 조롱이 투영돼 있다.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국가기관마저 도움의 손길을 거부했을 때 그는 마치 거대하고 견고한 벽을 마주하고 있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이처럼 국가나 지자체 등 행정기관의 위법하거나 부당한 처분에 맞서야 하는 국민을 보호하고자 존재하는 제도가 바로 행정심판이다. 행정심판은 소송 등 다른 수단에 비해 절차가 간편하고 신속하며 비용이 들지 않는데다, 생계곤란 정도나 고의성, 위반 전력 등 국민의 입장에서 정상참작 사유를 적극적으로 살핀다. 국민이 이긴 경우에는 행정청이 심판결과에 불복할 수 없도록 단심제로 운영된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여기서 나는 ‘강약약강’이라는 말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한다. ‘부당한 강자의 힘은 약하게, 침해받은 약자의 힘은 강하게’라는 의미로 말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러한 뜻을 실현하기 위해 행정심판 제도를 꾸준히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먼저 ‘부당한 강자의 힘을 약하게’ 하기 위해 내년부터 간접강제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행정기관이 행정심판 결과를 이행하지 않을 때 청구인에게 금전적 배상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반대로 ‘침해받은 약자의 힘을 강하게’ 하기 위한 제도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행정심판 사건에서 질병·장애나 경제적 사정 등으로 인해 행정심판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분들을 위해 국선 대리인을 지원하는 방안이 그중 하나다.

이외에도 2014년 ‘온라인 행정심판’을 도입해 지방에 거주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국민도 전국 어디서나 컴퓨터 접속만으로도 쉽고 간편하게 행정심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

이러한 노력은 시간이 없어서,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 혹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조차 몰라 권익을 보호받지 못하는 국민 모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 밖에도 수화 설명 영상과 영문 홈페이지 구축을 통해 정보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는 ‘강약약강’이라는 단어가 행정심판 제도 운영취지와 같이 긍정적인 의미로 새로 쓰이는 날을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강약약강’이 가지는 부정적인 의미가 지워질 수 있도록 국민 누구나 권익을 보호받고 공정한 행정을 누리는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억울함을 신속히 풀어주는 권리보호의 탄탄한 보루로서 행정심판이 그 소임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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