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업황 부진으로 실적이 줄었음에도 배당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주회사 계열 증권사의 경우 최대주주의 눈치를 보느라 영업이익이 줄었음에도 지난해와 비슷한 금액의 배당을 결정했다.
22일 서울경제신문이 배당이 결정된 주요 12개 증권사를 조사한 결과 이 중 75%에 해당하는 9개 증권사가 전년 대비 배당성향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8개 증권사가 전년보다 당기순이익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배당금을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해 배당성향을 높였다. 배당성향은 당기순이익 중 현금으로 지급된 배당금 총액의 비율이다. 배당성향이 가장 높았던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으로 444.1%에 달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1조823억원의 배당을 실시했는데 이 중 9,620억원은 지난해 11월 자기자본 확충을 위해 일시적으로 추진한 현금배당이었던 만큼 실제 배당성향은 높지 않다.
실질적으로 배당성향 1위는 대신증권(003540)으로 131.7%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27%)보다 5배 높은 수준으로 당기순이익은 964억원에서 306억원으로 줄었지만 배당금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지분 7%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양홍석 사장은 배당금으로 약 20억원을, 양 사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대신송촌문화재단은 약 11억원을 받아갈 예정이다. 이어룡 대신금융그룹 회장은 4억5,000만원의 배당금을 받는다.
지난해 말 합병에 성공한 미래에셋대우(006800)가 배당성향 93.17%로 그 뒤를 이었다.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전년(1,110억원)보다 배당금을 259억원으로 크게 줄였지만 합병대금으로 발생한 비용으로 당기순이익 역시 크게 줄어 배당성향이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매각이 진행 중인 이베스트투자증권(078020) 역시 이익이 절반가량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배당금은 전년과 동일한 185억원으로 결정, 배당성향을 76%까지 끌어올렸다. 최대주주인 사모투자펀드 G&A가 이베스트투자증권의 매각이 장기화되고 있음을 감안해 투자자금 회수 목적으로 배당성향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8년 이베스트투자증권을 인수한 G&A는 2010년부터 배당을 실시, 6년간 약 400억원에 가까운 현금을 배당으로 받아갔다.
금융지주에 속한 증권사들은 그나마 당기순이익에 맞춰 배당 확대 여부를 결정했다. 순이익이 소폭 늘어난 NH투자증권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배당금을 유지한 반면 이익이 소폭 줄어든 메리츠종금증권(008560)은 배당금을 줄여 전년과 비슷하게 배당성향을 유지했다. 당기순이익이 1,000억원 가까이 줄어든 신한금융투자도 배당금을 3분의1 수준으로 낮춰 배당성향을 줄였다.
증권사 관계자는 “일부 증권사들은 ‘고배당기업’에 속하기 위해 오히려 배당을 늘렸지만 결국 최대주주 이익 챙겨주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도 못하다”고 지적했다.
/박시진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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