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일본 주식자본시장(ECM) 거래량이 아시아의 전통적 금융허브인 홍콩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의 순환출자 해소, 주주환원 정책이 대규모 주식거래를 추동하고 투자 매력을 높인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이어진 엔화가치 약세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M&A)도 활발하게 이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현지시간) 시장조사 업체 딜로직을 인용해 올해 들어 이날 현재까지 일본의 ECM 거래 규모가 125억달러(약 13조9,700억원)로 홍콩의 54억달러보다 2.3배 많았다고 보도했다. 일본 ECM 거래는 지난 2010년 이후 최대치로 아시아 지역 전체 거래량의 45%를 차지한다.
이처럼 일본 주식시장이 쾌조를 보이는 것은 아베 신조 정부가 2014년부터 추진해온 순환출자 해소 정책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며 대규모 거래를 촉발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아베 정부는 일본 기업의 순환출자가 기업가치 저평가와 해외 투자액 진입 방해의 원인이라고 보고 경제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힘을 실어왔다. 아베 정부는 2014년 2월 ‘일본판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자율지침)’로 불리는 ‘책임 있는 기관투자가의 원칙’을 발표해 금융기관에 적극적인 의결권 참여를 독려한 데 이어 지난해 6월에는 ‘새로운 기업 거버넌스 코드(기업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일본 기업에 자사주 매입, 주주 환원을 압박하고 나섰다.
FT는 그동안 ‘침묵하는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던 일본 금융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독려하면서 최근 일본 대기업들의 순환출자 해소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후지일렉트릭은 지난달 금융기관 대주주들의 압박을 받아 계열사인 후지쓰 보유지분 중 9억5,700만달러어치를 매도하기도 했다. 이는 올해 일본증시에서 두 번째로 큰 주식거래다. 야노 마사키 모건스탠리증권 ECM부문장은 “스튜어드십 코드와 기업 거버넌스 코드 등에 힘입은 순환출자 해소가 일본(주식시장)의 특징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 이후 엔화가치가 안정적인 약세를 보이면서 일본 기업의 인수합병(M&A)이 늘어난 점도 일본증시 활성화의 요인이 됐다. 엔화가치는 미 대선일인 지난해 11월8일 달러 대비 105.08엔에서 지난해 12월16일 고점인 117.93엔까지 12.2%나 떨어졌다. 엔화는 올 들어 반등세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30일 현재도 달러당 111엔대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엔화약세에 힘입어 해외 투자가들은 일본 기업에 적잖은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 해외 투자가들이 일본 기업 인수에 투자한 금액만도 2조5,600억엔(약 26조3,400억 원)에 달한다. 엔화약세로 일본 대기업들의 실적호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 M&A도 증가 추세다. 지난해 일본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한 M&A 규모는 1,025억엔으로 4년 전과 비교해 3.6배나 증가했다.
FT는 올해 일본 ECM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글로벌 금융기업들이 홍콩에 뒀던 무게중심을 서서히 일본으로 옮기고 있다고 전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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