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의 조세회피처로의 투자금액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증권업계가 요구하는 해외 송금 등 외국환 업무가 확대될 경우 대기업의 불법 송금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대기업 상당수가 계열 증권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증권사의 외국환 송금이 허용되면 대기업 오너 일가의 역외송금과 탈세창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기업 조세회피처 송금액은 지난 2012년 이후 최근 5년 간 25조6,145억원에 달한다. 이 중 80%인 20조7,472억원은 대기업의 조세회피처 송금액이다. 조세회피처 대기업 송금액은 2012년 4조5,816억원, 2013년에는 4조7,074억원에 달했다가 2014년 3조4,257억원으로 소폭 감소, 2015년 3조9,874억원, 2016년 4조452억원으로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송금지역은 조세회피처인 케이맨제도·버뮤다·파나마 등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6월에도 해외 직접투자 절차 간소화를 국회에서 논의하려 했으나 불법 재산반출 우려 등을 이유로 현행 절차를 유지하기로 하는 등 조세회피처가 해외 자금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공감대를 국회와 금융권이 모두 가지고 있다”면서 “조세회피처로 흘러가 국내로 돌아오지 않는 금액은 탈세나 절세 등을 위해 활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조세회피처 해외 직접투자가 늘어나면서 최근 국세청의 역외탈세에 대한 세무조사 추징액도 증가하는 추세다. 국세청의 역외탈세 징수세액은 2011년에 2,858억원(156건), 2012년 6,151억원(202건)으로 한 해 사이 징수액이 3배 가까이 늘었다. 2013년에는 9,494억원(211건)으로 증가했다, 2014년에는 8,875억원(226건)으로 소폭 감소했다가 지난해 다시 1조1,163억원(223건)으로 급증했다.
이 때문에 증권사 외국환 업무 확대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은행권은 “국내 대기업들이 증권 자회사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계열 증권사를 통해 수출입 대금과 해외 직접투자 대금 등을 직접 송금할 경우 감시 사각지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충분한 모니터링이 이뤄지지 않아 증권사가 대기업 재산은닉과 역외탈세의 창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도 조세회피처를 통한 대기업의 해외 송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상임위 질의에서 “국내에서 조세회피처로 송금된 해외 직접투자 금액의 약 80%가 대기업 자금”이라면서 “대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를 가장한 재산은닉이나 역외탈세에 대해서는 철저한 감시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증권사의 경우 외국환 거래 관련 인력과 인프라 등이 은행에 비해 부족한 상황에서 증권사의 외국환 업무를 확대할 경우 해외 송금 업무에 따르는 각종 신고·확인 업무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외국환 업무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보였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