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대구 여대생을 성폭행한 범인으로 지목돼 법정에 선 스리랑카인 K(51)씨가 18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해당 사건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모순적인 결과를 맞게 됐다.
사건은 단순 교통사고로 묻힐 뻔했다가 피해자 속옷에서 나온 유전자(DNA) 정보가 13년 후 다른 사건에 연루된 K씨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재점화됐다. 재수사 결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여대생 집단 성폭행으로 드러났으며 피해자는 성폭행 도중 도망치다가 방향 감각을 잃어 고속도로로 진입해 참변을 당했다.
2013년 K씨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혐의를 부인하는 K씨보다도 공소시효와 먼저 싸워야 했다. 당시 강간죄 공소시효는 5년으로 2003년에 끝났고, 2명 이상의 범행에 적용되는 특수강간죄 역시 2008년 시효가 완료된 상태였다. 검찰은 피해자 가방에 있던 학생증, 현금 3,000원, 책 3권 등이 사라진 점을 들어 K씨를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 강간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증거 불충분으로 K씨는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후 검찰은 사건 당시 국내에 있던 스리랑카인을 전수 조사해 “(K씨의 공범)이 ‘이 여자를 성폭행했다’며 증명사진을 보여줬다”는 증인을 확보했다. 이는 K씨와 공범이 정씨의 학생증을 훔쳤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였다. 그러나 2심에서 증인의 말이 일부 오락가락한다는 이유로 K씨는 다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간 청주외국인보호소에 머물던 K씨는 이날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강제추방 형식으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DNA에 증인까지 확보해 범인 실체를 밝혀냈는데 법 이론으로 진실을 가리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밝혔다.
검찰은 법무부를 통해 사법 공조 절차를 밟아 K씨를 스리랑카 현지 법정에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검찰이 각종 증거자료를 스리랑카에 넘기면 현지 수사기관이 이를 검토해 기소하는 식이다. 스리랑카의 강간죄 공소시효는 20년으로, 한국보다 길며 형량도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한편 스리랑카는 국제 형사사법 공조 조약에 가입돼 있지 않아 상당한 법적·외교적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같은 죄로 두 번 기소되지 않는 ‘이중처벌금지’ 원칙을 법리적으로 어떻게 해결할지도 관건이다.
/성윤지인턴기자 yoonj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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