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
요즘 조선업계 분위기가 딱 이렇다. 지난해 죽을 쒔던 수주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는데 그렇다고 회복을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예견됐던 일감 절벽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그나마 선박 발주 모멘텀으로 기대됐던 각종 환경규제는 줄줄이 연기되거나 가시권 밖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버티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자산을 팔아치우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올 하반기는 ‘시계 제로’에 가깝다”며 “업황 자체가 여전히 불투명한 만큼 도크 추가 폐쇄, 호텔 등 비연관 자산 매각, 심지어 유상증자에 나서는 기업도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주 뛰었지만 기저효과일 뿐…‘게걸음’ 회복세=조선업계 ‘빅3(현대중공업(009540)·삼성중공업(010140)·대우조선해양(042660))’는 지난해 5월 자구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자구안을 만들 당시 생각했던 업황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3사(현대중공업은 미포조선·삼호중공업 포함) 수주 실적을 다 합쳐봐야 83억달러. 자구안이 업체당 연간 수주 규모를 60억달러로 계획됐음을 감안하면 실제 수주가 목표의 절반도 안됐던 셈이다. 올 상반기 수주도 증감률만 보면 대단해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48억달러(6월 말 기준)로 전년 연간(5억달러) 보다 10배 많은 일감을 낚아챘고 현대중공업도 42억달러(전년 대비 67% 수준)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이 약 8억달러에 그쳐 3사 합계로는 자구안 목표치에 근접한 정도다. 회복은커녕 이제 업황이 기지개를 켠 수준이라는 얘기다. 대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올해 좋아졌다고는 해도 지난해 수주가 너무 빠진 탓에 착시가 있다”며 “당분간 호재가 될 만한 재료도 없다”고 말했다.
◇환경 규제 등 연기…일감 절벽 더 심해져=오는 9월부터 실시될 예정이었던 ‘선박 평형수 처리 장치(선박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사용되는 바닷물 정화 시설)’ 의무화 조치가 2년 뒤로 연기된 것도 악재다. 또 다른 환경규제인 선박 연료 황산화물 함유량을 줄이도록 한 조치는 2020년부터라 발주 영향권에 있지 않아 조선업체로서는 더 아쉬운 대목이다. 유가 회복에 따른 해양 플랜트 수주, 물동량 증가로 인한 상선 경기 회복은 시간이 필요하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박사는 “환경규제가 발효되면 선사들이 이에 맞춰 선박을 운영해야 하고 기준에 못 미치는 선박은 폐기하고 새로 발주해야 돼 기회가 될 수 있었는데 어렵게 됐다”며 “하반기 기존 건조 능력을 메울 만한 호재가 딱히 없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부동산처분, 증자 등 자구안 빨라질 듯=자구안 이행률은 현대중공업이 90%(6월 말 기준)로 가장 앞서 있고 삼성중공업(50%), 대우조선해양(30%) 순이다. 최근 2년간 이어진 수주 절벽으로 올 들어 일감이 급감한 기업들로서는 인원 감축 등을 통한 비용 절감에 혈안일 수밖에 없다. 또 다시 마른 수건을 짜야 할 판이다.
지난 7월부터 군산조선소를 멈춘 현대중공업의 경우 임금 기본급 20% 반납을 추진 중이고 울산 본사 조선소 도크의 폐쇄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룹 내 미포조선도 일감부족으로 이달 중순부터 도크 1기를 다른 식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판교 R&D 센터, 거제 삼성호텔 등 부동산 매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올여름 2기의 가동을 접은 도크도 추가 폐쇄를 고려 중이다. 유휴인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 대우조선해양은 루마니아 망갈리아조선소 등 자산매각에 집중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 일감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며 “이 시기를 견디려면 현금 확보가 중요해 자구안 이행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말 삼성(1조1,000억원) 증자처럼 자구안과 별개로 자본을 확충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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