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아이유 분)은 이보다 더 팍팍할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 자신의 앞으로 남겨진 빚은 차마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데,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할머니의 보호자로서 쉽게 삶을 놓아버릴 수도 없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밤에는 주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몸을 혹사해도 남는 돈은 없다. 모조리 사채업자에게 주다시피 해도 질긴 악연은 끝나지가 않는다.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는 마음 놓고 눈을 붙일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런 이지안은 결코 착하지 않다. 오히려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다. 빚을 갚기 위해 박동훈(이선균 분)을 궁지로 몰았다. 박동훈에게 잘못 배달된 오천만 원을 훔쳐 사채를 갚으려 했으며,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자 이번에는 도준영(김영민 분)을 찾아가 거래를 했다.
이지안은 도준영에게 박동훈과 박상무를 회사에서 잘리도록 해주겠으니 인당 천만 원씩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해고당하도록 본격적인 덫을 놓았다. 박상무의 술에는 약을 타고 박동훈에게는 기습적으로 뽀뽀를 하고 그 장면을 몰래 사진으로 남겨 놨다.
지난 4일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지안은 박동훈과 박상무의 대화를 도청했다. 두 사람이 도준영의 통화목록으로 이야기를 나눈 것을 도준영에게 전달하며 “스캔들 보단 이게 더 깔끔하지 않나. 대표이사 물 먹이려는 작당모의”라고 제안했다.
이지안은 분명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과 함께 한 축의 서사를 담당하는 주인공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사는 박동훈에게 또 다른 고난을 얹어주려 한다. 제목은 ‘나의 아저씨’인데 그 아저씨와 자꾸만 척을 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지안은 분노보단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생존을 위해 누구든 적으로 돌리고 누구든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만큼 힘들게 살아왔음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1회에서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 분)에게 무참히 폭행당한 부분이 그랬다.
이 장면은 방송 직후 수많은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았을 정도로 자극적이고 폭력적이었다. 다만 앞서 제작진 측에서 “두 사람은 단순한 채무관계가 아니라 과거부터 얽히고설켜 있다. 앞으로 회차를 거듭하면서 관계가 풀려나갈 예정이다”라고 한 것도 일정 부분 이해는 간다.
이지안은 과거 이광일의 아버지에게 할머니가 맞는 것을 보고 칼을 들었다. 그로 인해 어린 나이에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 상처를 안고 살던 이지안은 박동훈에 자신을 투영했다. 그가 “식구가 보는 데서 그러면 그땐 죽여도 이상할 게 없어”라고 말한 데서 동질감을 느꼈다.
아이유는 지난달 진행한 ‘나의 아저씨’ V라이브에서 “현실을 미화하는 것도, 그렇다고 미워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현실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살고 계세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나의 아저씨’ 속 이지안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처절하게 살아 나갔다. 사무실에서 믹스커피를 훔쳐오고 식당에서는 남은 음식을 싸왔다. 할머니를 모신 요양원에 낼 돈이 없어서 밤중에 할머니를 데리고 몰래 도망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순간 가슴을 울리는 부분이 있다. 할머니를 위해서는 돈을 주고 과일을 사고, 달을 보기 위해 밤 산책을 나가는 것. 또한 자신을 도와준 박동훈이 모욕당하자 “더럽다”며 뺨 한 대 때릴 줄도 아는 성격을 가진 것 등이다.
아이유는 이미 음악으로서는 정점에 올랐다고 할 만한 가수다. ‘좋은 날’ ‘너랑 나’처럼 귀여운 매력이 묻어나오는 곡으로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이름에게’ ‘밤편지’ 등 서정적인 곡으로 듣는 이들을 위로하는 능력도 충분했다.
그런 그가 기타와 마이크를 놓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가 연기하는 이지안은 특별히 많은 대사를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꽂힌다. “잘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쉽다”가 그렇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혹은 아예 초연한 듯한 눈빛과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현실에 찌든 표정. 그리고 이따금 묵직하게 뱉어지는 대사는 그 자체로 현실을 담아낸 듯하다. 아이유가 노래가 아닌 연기로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법이 됐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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