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리명수 총참모장은 최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앞에서 졸다가 방송 카메라에 찍혔다. 2015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김정은 오른쪽에서 졸다가 처형됐기 때문에 그의 거취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그는 숙청되지 않고 며칠 뒤 남북정상회담에 참여했다. 하지만 아찔했던 기억이었음에는 틀림없었을 것이다. 리 총참모장도 졸고 싶어 존 것은 아닐 테지만, 불과 몇 년 전에 졸았다는 이유로 처형까지 당한 사람을 직접 본 만큼 더더욱 긴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그래도 잠은 우리의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잠은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하지만 아직 잠의 영역은 미지의 세계다. 호주의 작가이자 신부였던 저자는 잠과 불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물론 숙면을 위해 자기 전에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것을 먹어야 하는지 소개하는 의학서적은 아니다. 대신 잠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현대의 에디슨, 나이팅게일까지 많은 인물에게 잠이 어떤 의미였는지 역사, 문화적으로 살펴본다. 사실 저자 역시도 심각한 수면 무호흡증을 겪었다. 하룻밤에 300번 가까이 깼다고.
어떤 이들은 잠을 자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영국 수상이었던 마가릿 대처, 대문호 찰스 디킨스도 불면증에 시달렸다. 대처는 국가의 운영이라는 무게감 때문에 늘 깨어 있었다고 자서전에 썼지만, 그건 깨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연구에 따르면 21시간 깨어 있는 사람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8%인 사람과 반응속도·인지 능력이 같다고 한다. 대처는 사실 만취 상태로 국가를 운영하는 셈이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조금이라도 각성 상태를 연장하고 싶어한다. 바쁜 현대인의 가장 친한 친구가 커피인 것도 그 이유에서다.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는 하루에 60잔의 커피를 마시며 12~15시간씩 글을 썼다고 한다. 프로야구 KT 위즈의 김진욱 감독 역시 하루 30잔이 넘는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잠을 쫓기 위해 마시는 커피는 세계의 식생활뿐 아니라 문화생활까지 바꿨다. ‘이 시대의 상징’으로 부족함이 없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는 “위대하든 보잘것없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잠잘 때는 모두 평등하다”는 구절이 있다. 잠의 속성을 명확하게 드러낸 말이다. 잠은 결국 혼자 자야 한다. 그렇기에 수면과 관련된 문제는 다른 누구도 대신 겪거나 해결해줄 수 없다. 우리는 홀로 자고 홀로 깨며 홀로 꿈꾼다. 저자는 “잠자리에 들 때 우리가 차지한 공간은 겨우 침대 넓이지만, 잠드는 순간 세계는 무한히 확장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잠은 인생에 의미있는 시간”이라고 강조한다.
책 중간중간 저자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자신의 코골이 소리 때문에 수도원이 공장 같았다고 회고할 때나 인류 역사상 영웅 중 주걱턱이 많은 이유는 과학적으로 주걱턱이 코를 덜 골기 때문일 것이라고 표현할 때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불면증은 밤새워 고생할 일이 아니다. 불면증에 관심을 주지 않으면 토라져 있다가 가버릴 것이다. 1만5,000원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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