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감금과 심문 프로그램을 다시 시행하지 않겠습니다.”
미 CIA가 사상 처음으로 여성 수장을 맞았다. 물고문(워터보팅) 전력으로 곤욕을 치른 지나 해스펠(61·사진) CIA 국장 내정자가 상원 본회의 관문을 통과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17일(현지시간) 미 상원은 해스펠 내정자의 인준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54표, 반대 45표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마이크 폼페이오 전 CIA 국장의 후임으로 지명된 그는 CIA 71년 역사상 첫 여성 수장이 됐다.
첩보의 여왕으로 불리는 해스펠은 켄터키주에서 5남매의 장녀로 태어났고 공군인 아버지를 따라 전 세계 미군기지를 옮겨 다니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2 때 아버지에게 육군사관학교에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육사는 여학생을 받지 않는다”는 말에 꿈을 접었다. 대학 졸업 후 매사추세츠주 공군특수부대 군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당시 젊은 장교였던 마이크 비커스 전 국방부 정보담당 차관에게 “전 세계에서 비밀업무를 수행하는 CIA라는 곳이 있고 여성도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지원을 결심했다. 구직신청서를 작성한 뒤 정확한 주소도 없이 ‘CIA, 워싱턴DC’라고 쓴 우편을 보낸 끝에 1985년 CIA에 몸담게 됐다. 이후 해스펠은 “외국어 실력을 활용해 모험을 하고 싶었는데 CIA가 기회를 줬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1985년 CIA에 들어간 그는 세계 여러 국가의 지부장을 거쳐 국가비밀공작국장과 대테러센터장 수석보좌관 등 요직을 거쳤다. AFP통신에 따르면 해스펠은 터키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하며 30여년간 CIA 소속 요원으로 아프리카와 유럽 등지에서 첩보 활동을 벌인 베테랑이다.
그를 따라다니는 화려한 경력·수식어와 달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후임으로 내정된 후 쏟아진 비난 여론이 발목을 잡았다. 물고문 전력이 문제였다. 2002년 CIA가 태국에서 ‘고양이 눈(캐츠 아이)’이라는 암호명의 비밀감옥을 운영할 당시 책임자로 있으면서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물고문 등 가혹한 심문을 지휘했다는 내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뼛속까지 철저한 첩보우먼이던 그는 자신의 조직의 명성에 금이 간다며 사퇴까지 고려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만류로 인준 절차를 밟아왔다. 첩보의 여왕답게 이번 인준 통과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반성문을 내놓는 승부수를 던지며 승부사의 기질을 보였다. 상원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마크 워너 의원에게 “9·11테러 후 가혹한 구금과 심문 프로그램은 시행되지 않았어야 했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 일부 반대파의 마음을 돌려 결국 신임 CIA 국장 자리를 꿰찼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