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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英 세인트 조지 채플





지난 2005년 4월9일 영국 윈저시청 강당에서는 조촐한 결혼식이 열렸다. 찰스 영국 왕세자와 그의 오랜 연인 카밀라 파커 볼스의 재혼식이었다. 이날 결혼식에는 찰스의 두 아들과 특별히 초대된 하객 28명만 참석했다. 신랑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결혼식은 종교 예식 없이 성혼 선언만 한 채 25분 만에 끝났다. 영국 왕위 계승 서열 1위에 올라 있는 왕세자 결혼식이 이처럼 조촐했던 것은 이혼녀와의 재혼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마친 찰스 부부는 윈저궁 안에 있는 세인트 조지 채플에서 축복예배를 올렸다. 이 자리에는 결혼식에 불참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내외와 토니 블레어 총리 등 700여명이 참석했다. 여기서 두 사람은 전통적인 기도문을 외우는 형식으로 불륜을 참회하기도 했다. “우리는 말과 행동과 생각을 통해 성스러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수많은 죄와 사악함을 범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고자 합니다.”

찰스 부부가 결혼 축복 예배를 올린 세인트 조지 채플은 유서 깊은 왕실의 전용 예배당이다. 잉글랜드 내 가장 아름다운 고딕양식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예배당은 1475년 영국 왕 에드워드 4세가 자신의 묘지를 만들 목적으로 건설했다. 성가대석과 중앙통로·지붕 등은 1483년에 지어졌고 본당은 1496년 완성됐다. 돌로 된 둥근 천장은 1528년에야 마무리됐다. 이후 이 예배당은 왕실의 결혼식과 세례식·장례식 등 각종 행사가 치러지는 장소로 사용됐다. 또 이곳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다음가는 왕실 묘지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교회를 처음 건설한 에드워드 4세를 비롯해 헨리 6세, 찰스 1세, 메리 여왕 등 10여명의 왕족 묘지가 있다. 영국 왕실의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곳인 셈이다.



이 유서 깊은 예배당에서 영국 왕위 계승 서열 6위인 해리 왕자의 결혼식이 19일 열렸다. 해리 왕자는 주례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앞에서 미국 할리우드 여배우 출신인 메건 마클과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할 것을 약속했다. 마침 이 예배당은 1984년 해리 왕자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어머니인 다이애나비의 품에 안겨 세례를 받은 뜻깊은 곳이기도 하다. 모쪼록 우여곡절을 거쳐 결혼에 성공한 해리 왕자 부부가 이날 다짐한 대로 ‘사랑의 힘’을 바탕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를 기원해 본다.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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