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일. 터키 도안통신의 닐뤼페르 데미르 기자가 공개한 사진 한 장이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시리아 국적의 세 살배기 남자아이 아일란 쿠르디였다. 가족과 함께 난민선을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터키 해안가에서 발견된 쿠르디의 싸늘한 시신은 시리아 내전이 초래한 난민사태의 참혹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유럽은 1990년대까지 난민의 천국으로 불렸다. 난민 정착을 위한 지원이 많은데다 일부 국가는 노동력 확보 수단으로 난민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의 유대교-기독교(Judeo-Christian)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난민의 기원은 교회 성소(sanctuary)에서 유래한다. 범죄자라도 일단 성소에 피신하면 공권력이 미치지 못했다. 이 같은 종교적·문화적 전통이 현대로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난민 포용정책으로 계승된 것이다.
유럽 난민정책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 것은 1990년대 유고 내전과 알바니아 사태로 발칸반도에서 발생한 난민들이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기 시작하면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난민 수가 많지 않은데다 유입 지역도 제한적이어서 유럽 전체의 문제로는 부각되지 않았다.
난민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한 것은 2010년부터다. 아랍권에 민주화 바람이 불며 중동·북아프리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규모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 빠르게 유럽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당장 대규모 난민이 밀려드는 남유럽국가는 물론 이를 분산 수용해야 하는 다른 국가들로 반(反)난민정서가 빠르게 확산됐다. 특히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자 난민 수용을 둘러싼 갈등은 정점에 이르렀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 결정 역시 반난민 정서가 직접적 배경이었다.
쿠르디 사건 이후 3년이 훌쩍 지났지만 난민 해법을 둘러싼 갈등은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최근 629명의 난민을 태우고 유럽으로 향하던 난민구조선 ‘아쿠아리우스’가 이탈리와 몰타에서 잇따라 입항을 거부당하며 국가 간 분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이탈리아는 자국을 비난한 프랑스에 대한 항의로 대사를 초치했다고 한다. 난민 갈등의 해결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말처럼 ‘하나 된 유럽’의 미래를 결정할 리트머스 시험지임은 확실해 보인다.
/정두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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