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2015년 초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최민호 전 판사 사건으로부터 청와대와 여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의 상고심 선고를 앞당긴 것으로 드러났다.
3일 경향신문과 SBS 보도 등에 따르면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3부는 최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이동식저장장치(USB)와 하드디스크 등에서 최 전 판사 사건 관련 대응 문건을 확보했다. 먼저 ‘최 판사 관련 대응 방안’이라는 문건은 2015년 1월 최민호 판사가 ‘명동 사채왕’으로 불린 사채업차 최모씨(64)로부터 뇌물 2억6,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직전 기획조정실에 의해 작성됐다. 문건은 “청와대가 사법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된 상황이라 메가톤급 후폭풍이 예상된다”며 “(이 전 의원) 판결 선고를 1월22일로 앞당겨서 언론 및 사회 일반의 관심을 유도한다”고 계획했다. 당시 내란음모·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고법 형사9부에서 징역 9년·자격정지 7년의 실형을 받은 이 전 의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를 앞둔 상태였다.
실제로 최 전 판사를 긴급체포한 검찰이 사후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직전인 2015년1월19일, 당시 대법원 김모 공보관은 출입기자단 브리핑을 열고 “1월22일 오후2시에 전원합의체 선고를 한다”고 알렸다. 그 무렵 이 전 의원 구속 기한이 2개월 연장된 터라 선고 일정을 일부러 앞당겼다는 의혹이 없지 않았다. 결국 대법원은 계획대로 1월22일에 이 전 의원 사건을 선고했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후속 문건에는 “22일 이 전 의원 선고가 있어서 최 전 판사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며 “이번 사태 수습과 관련한 경험과 노하우 전수를 위해 위기 대응 자료 정리가 필요하다”고 서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일정 조정으로 여론을 좌지우지한 것을 자화자찬하며 이를 매뉴얼화하려한 것이다.
검찰은 재판부의 일정을 법원행정처가 결정한 것은 심각한 재판 침해라고 보고 일정을 조정하게 된 경위와 관련자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