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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 "신뢰 금간 법원, 뼈깎는 개혁 시급...특별재판부 도입은 반대"

재판거래 수사 협조·행정처 축소 필요하지만 사법부 본질 흔들면 안돼

변호사 시장 포화, 기업 취업 길 터줘 해결...세무사법 개정도 서둘러야

로스쿨 출신 사법연수원 교육 의무화...AI 법률사무 '리걸테크 법' 신중을

김현 대한변협 회장 /권욱기자




대담=김성수 선임기자 sskim@sedaily.com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가 있었다고 믿고 싶지 않지만 이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법원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현 상황을 직시해야 합니다. 뼈를 깎는 개혁을 추진해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지난 14일 서울 역삼동 집무실에서 만난 김현(61·사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그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법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당초 의혹이 제기될 때만 하더라도 상당수 법조인은 양승태 사법부의 문제가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판사들을 감시하는 ‘블랙리스트’ 수준에 그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의혹의 대상이 대한변협 등 민간 사찰을 넘어 재판거래로까지 번진 상태다. 전현직 대법관과 고위 판사들이 줄줄이 의혹에 연루됐지만 법원과 검찰은 여전히 줄다리기를 하는 형국이다.

김 협회장은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미공개 자료 전면 공개, 수사에 대한 법원 구성원의 협조, 의혹 연루 법관에 대한 재판 배제,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 분산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원이 자발적으로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지금보다 더 뚜렷한 개혁의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법부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도 제시했다.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축소하는 등 내부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예컨대 국선 변호사 제도 전반을 변협에 이관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판사들 대부분이 평생 변호사를 안 할 것처럼 법원 입장에서 주장하다가 막상 개업하면 딴소리를 한다”며 “현직 판사로 있을 때 미국처럼 판결문을 100% 공개하는 등 국민 권익을 위한 방향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무분별한 비판으로 사법부의 권위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법조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변호사단체 수장인 만큼 감정적인 비판 여론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김 협회장은 “변협이 법원을 견제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는 협조하는 관계를 앞으로도 유지할 것”이라며 “비판할 때도 법조인답게 법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법부가 잘못한 것은 고쳐야 하지만 법원의 본질까지 망가뜨려 회복 불능의 상태를 만들면 그것은 국가의 불행”이라며 “우수한 판사들이 단지 윗선의 지시를 받아 일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징계를 받는 것은 적폐청산에 에너지를 너무 낭비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에서 추진하는 특별재판부·특별영장판사 도입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특별재판부는 특별검사처럼 고위공직자의 비리 혐의에 대해 독립된 재판부를 꾸리는 제도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은 대한변협과 판사회의·시민사회가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최종 임명하는 방식이다. 특검 추천권을 이미 갖고 있는 변협 입장에서는 특별재판부 도입이 위상 제고에 나쁠 게 없다. 하지만 김 협회장은 특별재판부를 도입하면 사법부의 권위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특별재판부나 판사는 특검과는 전혀 다릅니다. 검사는 기소만 하지만 판사는 최종 결정권자라는 점에서 상당히 위험해요. 사법부에 대한 정면 도전인 셈인데 주요 사건 때마다 특별재판부를 꾸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김 협회장의 설명이었다.

재판거래 의혹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재심에 대해서는 국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일부 의원들이 추진하는 ‘재판거래 의혹 피해구제특별법’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다만 모든 사안에 대해 재심을 허용하기보다는 ‘부득이한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협회장은 “재판거래 피해자 구제는 국회가 슬기롭게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KTX 해고 승무원과 같이 억울한 사례는 예외적으로 재심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문제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변협은 외부 단체인 만큼 냉정함을 유지한 채 중립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김 협회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앞서 경찰이 검찰만큼 국민 기본권을 수호할 준비가 됐는지 등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밝혔다.

변협이 추천한 허익범 특별검사의 성과에 대해서도 입을 뗐다. 그는 드루킹 특검이 출범 시기 탓에 더 큰 성과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해 다소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미 증거인멸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 특검이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수사하다 보니 처음부터 어려운 환경이었다”며 “그 속에서 8,800만건에 이르는 여론조작의 전모를 밝힌 것은 열심히 수사한 결과이고 그 노력이 재판 과정에서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협은 지난 1999년 첫 특검을 도입한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부터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까지 6번이나 후보 추천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삼성 비자금 사건 당시 폭로자인 김용철 변호사를 내부 징계한 것이 공정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특검 추천권을 대법원장과 야당에 넘겨야 했다. 드루킹 특검은 무려 11년 만에 변협이 추천권을 되찾은 김 협회장의 대표적 성과이기도 하다.

변협 수장으로서 변호사 시장의 포화 상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변호사시험 합격인원을 1,000명 수준으로 줄이고 기업의 사내 변호사 채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취업 길을 터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해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시험 합격생이 1,500~1,600명씩 쏟아지다 보니 변호사와 세무사·변리사 등 다른 직종과의 영역 갈등이 고조된 상황이다.

김 협회장은 “사내 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기업들이 아직 그 가치를 잘 모른다”며 “그래서 전국경제인연합회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과 함께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사내 변호사를 한 번 고용해본 기업은 그 역할과 활약을 인정하고 변호사 수를 점점 늘리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라며 “미국에는 변호사 출신 최고경영자도 많은데 현재 3,000명 수준으로 늘어난 사내 변호사들이 의사결정권자로 자리 잡으면 변호사를 더 기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호사의 세무대리 업무 허용을 막는 세무사법에 관해서는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대로 서둘러 개정해야 한다”고 즉답했다. 하지만 법률 사무를 인공지능(AI)이 처리하는 ‘리걸테크’ 산업에 한해 변호사와 비(非)변호사 동업을 허용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사법연수원 교육 의무화도 소신대로 추진할 뜻을 밝혔다.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변협의 교육과정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법연수원을 활용해야 한다”며 “학교에서는 못 배우는 실무를 배우는 것인데 로스쿨 도입 취지와 상충하는 것도 아니고 6개월 과정으로 기수 문화가 부활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변호사시험에 떨어지고도 계속 도전하는 이른바 ‘변시 낭인’ 문제에 관해서는 “변시 합격률이 너무 낮은 로스쿨을 과감하게 통폐합하고 로스쿨 편입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권욱기자

He is…

△1956년 서울 △1975년 경복고 △1980년 서울대 법대 △1980년 24회 행정고시(2차) △1983년 25회 사법고시 △1983년 서울대 법학 석사 △1984년 코넬대 법학 석사 △1985년 워싱턴대 법학 석사 △1985년 미국 보글앤드게이츠법률회사 △1990년 워싱턴대 법학 박사 △1991년 뉴욕주 변호사, 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1992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1999년 국토교통부 고문변호사 △2007년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2008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2009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2017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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