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의 시장점유율(market share) 경쟁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시간점유율(time share) 경쟁으로 고객이 공간에서 어떤 기억, 어떤 느낌을 가질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고객 수가 아니라 고객의 소중한 시간에 가치를 둬야 한다는 거죠.”
전병국 하나금융투자 클럽원WM(Club1 WM)센터장(전무)은 ‘인연 중시론자’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 인연이란 스치지 않으면 맺어질 수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며 스치는 어떤 인연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발품을 판다. 출장차 일본을 오가며 알게 된 맛집이나 서점 등은 물론 앉아서 도쿄 지명을 좔좔 외우며 감성 가득한 장소들을 소개한다. 그가 직접 펴낸 책은 심지어 맛집 여행객들의 길라잡이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그가 만들려는 것은 ‘영업’이 아니라 인연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플레이스원’은 전 센터장의 이 같은 철학이 반영된 공간이다. ‘놀이’라는 테마에 ‘콘텐츠’를 더해 하나금융그룹과 소비자들의 옷깃이 많이 스칠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건물 8층에 상담센터가 아닌 고깃집과 프렌치 레스토랑이 위치하게 된 것도 “9층에서 밥 한 끼 하시죠”라는 말이 ‘어떤 상품이 좋아요’라는 말보다 호소력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
상품 권유가 아닌 ‘여기서 즐기고 놀다 가세요’라는 생각이 얼마나 영업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들지만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클럽원은 개점 1년 만에 자산이 4조5,000억원에서 6조원으로 증가했다. 은행과 증권이 각각 7,000억원, 8,000억원 늘었다. 국내 최대 점포의 하나인 KEB하나은행의 영업1부 PB센터가 2조원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클럽원의 규모는 파격 자체다. 특히 1년 만에 대형 PB센터의 전체 자산과 맞먹는 실적을 거둔 것은 업계에서 거의 기적으로 통할 정도다.
전 센터장은 1년 전부터 아이디어 하나하나에서 설계까지 직접 챙기며 기획했다. 그는 플레이스원 곳곳을 보여주며 “이 공간의 콘셉트는 ‘집에서 더 즐거운 집으로의 출근’”이라며 “이런 사무공간이 국내에 없어 설계 업체도 처음에는 당황할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북유럽 사우나를 모티브로 한 상담실, 5억원대의 스피커를 구비한 음악감상실, 디자인·건축 책들이 가득 찬 서점식 공간, 누구나 책을 볼 수 있는 시민쉼터까지 금융투자 건물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외관도 마치 조개껍질을 붙여놓은 듯한 올록볼록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가히 ‘돈과 문화의 아지트’라고 불릴 만하다.
그래서인지 이달 초 서울시 건축 분야의 최고 권위상인 ‘2018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까지 받았다. 금융기관이 건축대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그는 “옷깃만 스쳐도 고객이 되는 곳이 클럽원”이라며 “국내에 이런 공간이 없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경험한 복합점포의 예술성을 다 망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김보리·권용민 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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