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민(50·사진) 밀리그램디자인 대표는 22년째 발달장애아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아들은 엄마의 삶을 확 바꿔놓았다. 음악가였던 조 대표가 지금은 인테리어 업체의 대표가 됐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와 씨름을 하다 보니 우울감에 시달리는 날들이 늘어갔어요. 제가 안정돼야 아이도 안정될 것 같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조 대표가 선택한 공부는 ‘건축학’. 아들을 데리고 복지관에 다니면서 받은 상처들이 39세의 그를 건축학으로 이끌었다. 복지관 환경이 낯선 아이는 20분간 울다가 고작 15분 정도 치료를 받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일반인 입장에서 디자인돼 있는 복지관 공간이 발달장애를 앓는 예민한 아이들에게는 곤욕이었다. “복지관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에 맞춰 교육실이 만들어진 거죠. 방음이나 조명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배려가 부족하더라고요.”
발달장애인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했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등을 배우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부모조차 편견을 가지고 발달장애인들의 능력을 한계짓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다.
아이를 관찰하고 연구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3월, 조 대표는 밀리그램디자인을 설립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양천·원광·성동·강북복지관을 포함해 서울에만 20곳 이상의 복지관에 밀리그램디자인이 적용돼 있다.
양천복지관의 여자 화장실 문은 빨간 바탕에 하얀 동그라미로 여성용 표식이 꾸며져 있다. 발달장애인들은 이를 보고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복지관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디자인을 발달장애인 입장에서 바꾸면 치료 효과도 커질 수 있어요.”
엄마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어느새 22세 청년이 된 아들은 엄마를 따라 첼로를 연주하는 음악가로 성장했다. 함께 연주회에 나가 연주하는 시간이 조 대표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올해 밀리그램디자인은 여성창업경진대회에서 우수상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달 안으로 사회적 기업 인증도 받을 예정이다. 조 대표는 “더 많은 복지관·의료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대표 디자인으로 자리잡고 싶다”고 밝혔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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