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오락가락하는 정책 혼선과 주요 부처 장관직 공석에 따른 혼란으로 총체적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철군 방침을 밝힌 후 백악관과 행정부에서는 서로 다른 입장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고 국경장벽 예산은 물론 ‘90일 시한’으로 진행 중인 미중 무역협상 시한에 대해서도 서로 엇갈린 메시지를 내고 있다.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로 가뜩이나 비정상적인 국정운영은 국방부와 내무부, 백악관 비서실장 등 트럼프 대통령이 경질한 주요 각료급 자리가 장기간 대행체제로 메워지면서 적잖은 부작용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6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미군의 철수조건은 시리아 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와 이들에 맞서 미군과 함께 싸워온 쿠르드반군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미군 철수) 시간표는 우리가 이행할 필요가 있는 정책 결정에 달렸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이날 볼턴 보좌관의 ‘조건부 철군’ 발언은 미군 철수가 천천히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처음 확인한 것으로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해온 ‘조속한 철군’과 결을 달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철군 결정을 내린 지 한 달도 안 돼 트럼프의 주장과 상충하는 발언이 나왔다”며 “미군이 수개월 또는 수년간 더 시리아에 주둔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사실상 트럼프의 조기 철군 결정을 철회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9일 시리아 주둔 미군을 30일 내 철수시키겠다고 밝히며 동맹국들은 물론 참모들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시리아 철군 발표 등에 항의해 사임하는 등 트럼프 정부는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트럼프 행정부 내의 일관되지 못한 이러한 움직임과 관련해 NYT는 “행정부 내부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내부 혼선은 셧다운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AP통신은 의회에서 셧다운을 막기 위해 단기적 해법을 모색했고 백악관도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보수 지지층의 압력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셧다운을 강행했다고 전했다. 장벽 예산을 기존 요구분의 절반인 25억달러로 줄이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수정안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원안을 고수하며 원점으로 돌아갔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편에 서서 협상하는 참모들과 엇박자를 내며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중 무역협상 시한을 놓고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앞서 무역대표부(USTR)는 관보를 통해 미중 양국이 오는 3월1일인 협상시한을 넘기도록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면 이튿날부터 2,00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적용하는 관세율을 현 10%에서 25%로 올린다고 못 박았지만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최근 무역협상에 “인위적 마감시한(artificial deadline)은 없다”며 USTR의 방침을 번복했다. 이에 앞서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중국과의 협상 기간을 90일에서 더 연장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정부 혼선이 빚어지는 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더해 내각의 25%가 대행체제로 유지되고 있는 기형적 국정 운영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미 행정부 내 24개 각료급 직위 중 국방부와 내무부·법무부 장관, 환경청장, 백악관 비서실장, 주유엔대사 등 6개가 공석이며 이 자리는 대행으로 채워져 있다. 이 중 백악관 비서실장을 제외한 인선은 반드시 상원의 인준을 거쳐야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행체제라는 임시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번거로운 인선절차 대신 대행체제를 장기화하려는 의도를 내비쳐 혼란이 더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 후임자를 물색하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로서는 급할 것이 없다”며 “나는 대행체제를 좋아한다. 내게 더 큰 신축성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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