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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간호섭 교수]"패션은 냉정하고 치열한 바닥...실밥·단추 하나로 승부 갈려"

세계 이목 끈 콜라보작업부터

해양경찰청 유니폼 제작까지

화제 몰고 다니는 '팔방미인'

니트 하나로 한달 100억 매출

패션상품 불모지였던 홈앤쇼핑

단숨에 패피들 성지로 바꿔놔

치대생서 의상학과 청일점 변신

28세에 대학교수로 이름 올려

레지나 표·임재혁·김진영 등

한류 이끄는 디자이너의 스승님

강의 하고 고객들도 만나지만

변하지 않는 건 디자이너 명함

왕년이라는 단어 가장 싫어해

영원히 현역으로 기억되고 싶어

간호섭 홍익대 교수 인터뷰. /성형주기자




글로벌 패션디자이너의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는 H&M 같은 SPA 브랜드에서 컬래버래이션 제의가 오는지 여부다. 베르사체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 중인 H&M은 카를 라거펠트부터 모스키노, 아크네, 마틴 마르지엘라 등 그 컬래버 리스트가 쟁쟁하다 못해 눈부시다. 이전에는 SPA 브랜드에서 컬래버 제의가 오면 도도한 명품 입장에서 ‘우릴 뭘로 보고’라며 발끈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이들과 손잡으려고 안달일 정도다. SPA 브랜드를 넘어 컬래버 행렬이 이어지는 유명 스트리트 브랜드가 ‘갑(甲)’이 돼버린 세상이 됐다.

국내 시장에서는 디자이너 인기의 잣대가 홈쇼핑이다. GS홈쇼핑의 손정완 디자이너, 현대홈쇼핑의 정구호 디자이너, 지난해에는 홈쇼핑을 멀리하기로 알려진 지춘희 디자이너도 CJ오쇼핑과 손을 잡았다. 홈쇼핑 중에서 패션의 불모지로 알려진 홈앤쇼핑은 스타디렉터 간호섭 홍익대 교수 겸 패션디자이너를 선택했다. 간 교수는 홈앤쇼핑에서 매출로, 또 화제성으로 사고를 제대로 쳤다. 상대적으로 패션이 취약했던 홈앤쇼핑은 간 교수와의 협업만으로도 이제는 홈쇼핑계 패션 뉴스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지난해 패션계는 그야말로 간 교수를 빼고 얘기할 수 없다. 지난해 7월에는 동서양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경험하는 전시로 화제가 됐던 바카라 전시, 9월 홈앤쇼핑에서 그의 자체브랜드(PB)인 ‘엘렌느(AILENE)’와 ‘슬로우어반(SlowUrban)’ 론칭, 10월 국제 패션아트 비엔날레 인 서울 개최, 11월 해양경찰청 유니폼 디자인까지 1년에 하나만 해도 크다는 행사를 그는 한 해에 네 개나 치렀고 모두 화제를 몰고 다녔다.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고급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와 동양 특유의 조형미가 깃든 간 교수의 시그니처 패션아트 작업인 ‘족자의’의 만남은 외신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국제 패션아트 비엔날레는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패션문화협회가 주최해 네덜란드·대만·독일·미국 등 세계 25개국 패션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콧대 높은 브랜드인 바카라와의 협업 전시부터 홈쇼핑, 해양경찰청 유니폼까지, 패션계가 얼마나 그를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로서 간 교수의 카테고리는 한계가 없다. 오는 4월27일 한국패션비즈니스학계 회장 취임을 앞두면서 학계는 물론, 홈쇼핑 대박으로 가장 어렵다는 소비자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그는 이 시대 진정한 CD다.

간호섭 홍익대 교수 인터뷰. /성형주기자


◇“넉 달의 기록을 다시 경신, 한 달에 100억원”…가성비+가심비 합작품=홈쇼핑 업계에서 홈앤쇼핑이 간 교수와 손을 잡은 것은 신의 한 수. 비교적 패션 카테고리가 약했던 홈앤쇼핑을 단숨에 패션에서 빠질 수 없는 쇼핑채널로 올려놓았다. 봄철은 패션에서 비수기다. 봄은 겨울과 겹치는 시기가 있다 보니 소비자들은 특별한 것이 아니면 봄옷에 지갑을 열지 않아서다. “요즘 패션 트렌드는 가성비와 가심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해요. 홈쇼핑은 가성비·가심비의 절충점을 누가 더 잡는지에 대한 경쟁이에요.”

간 교수가 선보인 홈앤쇼핑 PB인 엘렌느와 슬로우어반은 지난해 9월19일 론칭해 12월까지 4개월간 1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현재 스코어는 더욱 화려하다. 3월 한 달 월 매출 예상액만 100억원에 달한다. 지난 2월27일부터 이달 18일까지 이미 60억원을 넘어섰다. 19일부터 이달 말까지 6회의 방송이 더 남아 있다. 넉 달간의 매출을 한 달 만에, 그것도 패션 비수기인 봄철에 달성하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게 되는 셈이다. 그것도 단 한 가지, 니트 단일 품목으로 말이다. 그의 품질에서는 깐깐함, 안목에서는 남다른 감각을 소비자들이 알아봤다. 그는 “저를 믿고 한번 입어보라는 말은 정말 품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못하는 말”이라며 “제가 직접 실밥 같은 마무리까지 살펴본다”고 말했다.

이제는 가심비 영역에서 똑똑해진 요즘 소비자를 어떻게 잡았을까. 그의 니트에는 목 뒤 상표가 없다. 일부 명품에서 하는 방식이다. 대신 그곳에 두 가지 색의 니트 직조를 넣었다. 로고보다 품질이 중요한 고객들의 마음을 사소한 부분까지 직접 살폈다. 홈쇼핑의 경우 무료반품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반품은 오히려 회사에 부담이 된다. 간 교수의 니트가 반품률이 낮은 것은 그의 이런 노력이 배어서다.

빠른 유행의 SPA 브랜드조차 품질력이 상향 평준화된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뭔가 다른 것(something different)’이다. 간 교수가 흥행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깔끔하지만 뭔가 다른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갈망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가 참수리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해양경찰청 유니폼 역시 사용자들 설문조사에서 만족도 80%를 받았다. 유니폼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만족도다.

간호섭 홍익대 교수 인터뷰. /성형주기자


◇“한국 패션, 유학을 가던 나라에서 유학생을 받는 나라”=그는 패션 업계에서 ‘최초·최연소’ 등의 기록을 달고 다닌다. 그런 그도 처음부터 의상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의외로 그는 88학번의 치대생이었다. 삼수 끝에 성균관대 의상학과 ‘1호’ 남학생이 됐다. 40명 동기 중에 6명이 남자였지만 이전 학번에는 모두 여학우였던 것을 고려하면 의상학과 최초의 남학생이다. 또 28세의 나이로 덕성여대 의상학과 교수가 되면서 최연소 교수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덕성여대 의상학과는 학교의 사활을 걸며 청담동에 파격적으로 의상학과를 열었고 이 실험을 이끌 새로운 인물이 필요했다. 이 실험을 이끌 주인공으로 미국에서 일하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이용해 면접을 봤던 그가 뽑힌 것이다.

2003년 그가 홍익대로 옮겼을 때 패션을 전공하는 학생은 섬유미술과 전공생 80명 중 고작 5명에 불과했다. 패션은 미대에서 일종의 ‘양념’이었다. 2005년에는 학생 5명을 데리고 졸업작품회를 했다. 이제는 그 패션디자인이 엄연한 독립된 학과로 성장해 63명이 큰 두 반으로 나눠 공부하고 있다. 섬유미술과는 섬유미술패션으로 성장했고 그 성장을 이끈 인물이 그다.



“요즘은 미국 파슨스, 영국 로열왕립스쿨과 같은 쟁쟁한 해외 유수 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석박사로 홍익대를 선택하는 시대입니다. 한편으로는 학부 때 이런 쟁쟁한 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이 대학원 과정으로 선택한 학교이기 때문에 수업의 질을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이 나를 글로벌 대학교수들과 비교했을 때도 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또 현재 홍익대 대학원생 중에서도 중국 유학생들이 거의 30~40%를 차지할 정도로 글로벌에서도 국내 패션교육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많은 활동이 있지만 내가 가장 애정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는 학교에서 아직도 가장 깐깐한 교수로 통한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강의 준비를 게을리한 적이 없고 또 지각 한 번 한 적이 없다. 개강 첫날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 역시 시간이다. 방송에서 보이는 유함과 달리 천생 교수다.

간호섭 홍익대 교수 인터뷰. /성형주기자


현재 패션계의 한류를 이끌고 있는 국내 디자이너 뒤에는 그가 있다. 셀린느·록산다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2013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론칭한 레지나 표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센트럴세인트마틴스으로 갈 때 추천서를 써줬던 인물이 간 교수이기도 하다. ‘비스퍽’으로 런던과 파리에서 K패션을 우수성을 알리고 있는 임재혁 디자이너, 듀이듀이의 김진영 디자이너 역시 그의 제자다. 잘 가르쳐서 그런 것 아니냐는 말에 그는 또 특유의 손사래를 친다. “학생들이 스스로 잘나서, 본인들이 잘해서 된 거죠.”

패션의 최전선에 있는 그의 꿈은 K패션의 위상이 더 높아지는 것. 그는 “한국 패션이 가성비는 훌륭하다”며 “이제는 글로벌에서 우리 브랜드를 가심비 높은, 갖고 싶은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산업 가운데 자동차·휴대폰 등의 품질력을 세계가 알아주듯 패션도 마찬가지다. 다만 ‘애플’의 가심비 같은, 소비자들이 갖고 싶은 무엇을 K패션에서도 찾는 게 이제 우리의 숙제”라고 말했다.

간 교수는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서 깐깐한 멘토이자 심사위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상민의 절친으로 올 2월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그의 원칙은 ‘패션’과 관계된 대외활동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 “교수이고 또 홈쇼핑에서도 소비자들을 만나지만 어떤 순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디자이너’ 명함입니다.” 그는 창의성으로 승부 하는 패션 바닥에서 아직도 쟁쟁한 현역이다. “제가 가장 경계하는 얘기는 ‘왕년’이에요. 앞으로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지난날 얘기가 나오는 그 순간 우리 모두는 ‘패한’ 것이에요.”

디자이너도 예술적 창의성이 필요하기에 우연성을 바란다면 그 치열한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간 교수는 “옷은 그림과 다르기 때문에 그림은 우연성이 있을 수 있지만 옷은 실밥 하나, 단추 하나가 떨어져도 상품성의 가치가 떨어진다. 또 매출이 없으면 옷은 그저 천 조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가장 냉정하면서 치열한 바닥”이라며 “여기서 ‘영원한’ 현역이고 싶다”고 말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He is

△1970년 서울 △1995년 돌로레스 퀸 최우수 졸업생상 △1996년 미국 Stylewars 디자인 경진대회 최우수상 △2005년 태국문화교류상 수상 △2015년 홍익대 미술대학 학과장 △2017~2018년 미국 하버드대 초청 연구교수 △2018년 제17대 한국패션문화협회 회장 △2019년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 회장, 한중패션산학협회 이사장, 홈앤쇼핑 ‘엘렌느’ ‘슬로우어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홍익대 미술대학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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