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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정치]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이낙연 총리 세월호 가족 영화 '생일' 관람

"고통 비교해선 안되고 쉽게 위로해도 안돼"

세월호 참사 뿐 아니라 고통의 기억 많아

차명진·정진석 한국당 전·현 의원 망언 등

공감은 못하더라도 함부로 말하진 말아야

20일 영화 ‘생일’ 관람하는 이낙연 국무총리./연합뉴스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역. 서울 최대 번화가 중 한 곳답게 흐린 날씨에도 봄날 주말 여유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런 강남역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나타났고, 이 총리는 곧바로 인근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생일’을 관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스포일러를 접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줄거리이기에 상영관 내부 공기는 영화 시작 전부터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여기저기서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고, 이 총리 역시 여러 차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습니다.

이 총리는 영화가 끝난 후 감독과 제작자, 세월호 참사 추모 시를 쓴 문인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총리는 우선 전남도지사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이 총리는 세월호 참사 발생 3개월 후인 2014년 7월부터 2017년 5월 국무총리로 임명되기까지 2년 10개월 동안 전남 도정을 책임졌습니다.

이 총리는 “그 기간 동안 진도와 목포에 세월호 가족들이 있었다”며 “한 달에 한 번은 가족분들을 뵈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총리는 “(전남 지사를 하면서) 3년 동안 (세월호) 가족들 만나면서 얻은 결론이 함부로 위로하지 말자는 것이었다”며 “가족들은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의 잣대로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이 총리의 말에 이종언 감독도 “그냥 옆에 있어 주는 게…”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고등학생 아들과 오빠를 잃고 살아가는 모녀./영화 ‘생일’ 스틸 이미지


이 총리는 타인들의 고통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그간 여러 경험에 비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이 총리는 “제일 해서는 안되는 게 함부로 위로하는 것, 곧 나아질 거라고 말하는 것”이라며 “위로한답시고 더 심한 고통 겪은 사람 있다고 말하면 안된다. 고통은 비교 하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총리는 영화 속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고등학생 오빠를 잃은 초등학생 예솔이인 것 같다는 의견도 내놓았습니다. 또 이 총리는 “시간 가면 나아질 거란 말도 피해야 할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더해 “그러면 무엇을 해줘야 하나. 옆에 있어주면 된다. 세월이 한참 지나면 말을 걸어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총리는 팽목항에서, 목포 신항에서 유가족들을 만나던 시절을 한번 더 회상했습니다. 이 총리는 “오히려 그분들이 저를 위로하려 하더라”며 “뭔지는 모르겠는데, 인간 속에, 그런 힘 같은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만으로, 서로 보듬을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이란 뜻으로 해석됐습니다.

20일 영화 ‘생일’ 관람 후 영화 제작자 및 문인들과 이야기 나누는 이낙연 국무총리./연합뉴스


문득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5주기 아침 인터넷 뉴스 사이트를 휩쓸었던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망언이 떠올랐습니다. 차 전 의원이 15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말입니다. 너무 지저분한 글이라 다시 옮겨 쓰진 않겠습니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 의원은 유사한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후 “오늘 아침 받은 메시지”라는 말을 붙이는 방식으로, ‘출구’를 만드는 치밀함까지 보여줬습니다.

영화 관람을 마친 이 총리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꼭 세월호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에서만 권유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큰 고통에 처한 사람들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함께 대처해 나가는 지를 영화를 통해 한번 들여다봤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총리가 하나 하나 열거하진 않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세월호 유가족 뿐 아니라 고통의 기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세월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말은 타인의 고통을 시간적 비교로 재단하는 것입니다. 또한 ‘더 심한 일을 겪은 사람도 있다’는 말은 공간적 비교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평가 절하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고통의 당사자가 아닌 타인에게 완벽한 공감을 요구하고, 화를 내서도 안 될 입니다. 사람마다 공감 능력이 다르고,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타인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 그 정도 감수성은 가진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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