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분야 특허 전문 회사인 IFT(Innovative Foundry Technologies)가 중국과 대만 등의 내로라하는 가전 및 반도체 기업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무더기 제소했다. 특허 침해 등 미국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이 이번 제소에는 빠졌지만 미국의 지적 재산권 보호를 명분으로 한 특허 공세 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7일 USITC와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화권 IT 기업들이 관세법 337조 위반 등의 혐의로 USITC에 제소당했다. 해당 기업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와 팹리스(설계 전문)인 엠스타를 포함해 중국의 BBK그룹 자회사인 비보·오포·원플러스 등 스마트폰 업체, 하이센스·TCL 등 TV 업체 등이 대거 포함됐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퀄컴과 TV 제조업체 비지오 등도 제소당한 기업 리스트에 들어갔지만 절대 다수는 중화권 업체다.
제소한 IFT는 지난 2017년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설립된 특허전문회사로, 반도체 분야에서 총 125개 특허를 보유했다. IFT는 현재 텍사스인스트루먼트·폭스바겐·포드·시스코 등과도 특허 소송 중에 있다. 이번에 문제 삼은 미국 관세법 337조의 경우 미국 기업이나 개인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에 대해 ITC가 수입 금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USITC는 조만간 공청회 일정을 잡고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조사 기간은 개시 후 45일 이내다. 특히 USITC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게 되면 60일 이내에 명령을 내리게 된다.
재계는 이번 제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술 패권 경쟁 속에 중화권 기업을 집중 타깃으로 삼은 만큼 IFT와 미국 정부 간 이심전심의 교감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단순히 특허괴물로 불릴만한 특허전문업체의 무차별 특허공세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중국의 스마트폰업체와 가전 업체들은 모두 본토 장악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시장인 미국 등 해외 공략을 가속화 하고 있다. 대만의 TSMC와 엠스타 등은 중국의 반도체 업체와 협력 관계가 돈독하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관련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경쟁사가 지적 재산권 침해 시비에 노출된 데 따른 반사이익보다는 보호무역 흐름 속에 이뤄지는 특허공세에 유의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강하다. 앞서 SK하이닉스도 미국 업체 넷리스트의 반도체 특허 침해 소송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전자 업계의 한 임원은 “이번 사건을 속단하기 이르다”며 “IFT가 향후 우리 기업에도 칼날을 겨눌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는 “돈을 노린 특허 공세야 새삼스럽지 않지만 자국 시장을 호락호락 내주지 않으려는 의도도 맞물려 있다고 본다”며 “특허 공세가 기술 패권 경쟁의 연장선으로 변질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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