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목 시세보기

서울경제

HOME  >  오피니언  >  사내칼럼

[심희정의 All that Style] 명품이 궁금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봐!

■명품 트렌드 재단사들, 밀레니얼·Z세대 소유욕을 자극하다
'오프화이트' 브랜드 디자이너 아블로
음악·패션계 활약하며 아이덴티티 창조
버버리, 지방시 출신 디자이너 영입
새 모노로고 장착하며 젊은층 공략
클래식한 '장인템' 이미지 강했던 명품
이제는 매 시즌 '트렌디함' 무기로 승부

  • 심희정 기자
  • 2019-05-29 17:42:59
  • 사내칼럼
[심희정의 All that Style] 명품이 궁금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봐!

온갖 완판, 콜라보레이션, 한정판이라는 수식어에 따라 붙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밀레니얼, Z세대가 열광하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죠. 버질 아블로 오프화이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지난 24일 DJ의 자격으로 내한해 성수동 대림창고에서 음악컬쳐 전문 매거진 ‘믹스맥 코리아’의 3주년을 기념해 공연을 펼쳤습니다. 그는 이날 힙합 아티스트 칸예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스페인 이비자섬 페스티벌 Circoloco의 전속 DJ인 뮤지션으로 참가해 테크노 음악과 힙합음악의 경계를 자신만의 색으로 표현해 팬들을 열광하게 했지요. 건축가 출신의 아블로가 평소 “젊은 건축가들은 건물을 짓지 않아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공언하더니 그는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군요. 전세계는 그런 아블로가 이끄는 오프화이트의 매력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음악과 패션계를 넘나들며 활약 중인 아블로라는 인물의 영향도 큽니다.

[심희정의 All that Style] 명품이 궁금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존재는 글로벌 업계에서는 계속돼 왔지만 사실 한국에서 쉽게 통용된 것은 얼마 안됩니다. 원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광고업계에서 ‘광고기획총괄관리자’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는데 패션업계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브랜드 전반의 이미지와 스타일, 콘셉트를 창조하는 총감독인 셈이죠. 브랜드의 간판으로 누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오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성패가 달려 있는 겁니다. 특히나 과거에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명품의 패션쇼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온라인 SNS 플랫폼을 통해 공유돼 패션계 트렌드를 시시각각 알 수 있게 된 만큼 과거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뭔지도 몰랐던 사람들 조차 옆집 형, 누나 이름 부르듯 브랜드별로 그들의 이름을 외우고 브랜드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 중 역대 세 번 째 흑인 디자이너인 아블로 오프화이트 크리에티브 디렉터는 유명 패션 스쿨 출신 디자이너들과 달리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석사 출신입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그는 건축일을 하면서 주말에는 디제잉을 하기도 했다죠. 그런 그를 패션계에 입문 시킨 이는 바로 미국 유명 래퍼 카니예 웨스트랍니다. 그는 카니예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앨범 디자인, 패션 머천다이징, 무대 디자인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파이렉스 비전’이라는 실험적인 브랜드를 내놓습니다. 저렴한 옷을 구입하고 자신이 만든 로고를 프린팅 한 후 온라인에서 판매했더니 그게 대박이 난 거죠.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오프화이트’를 시작합니다. 무슨 화살표 모양의 시그니처 로고는 20세기 건축가 미스 반 데어로에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요.‘주의’라는 의미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겠다는 뜻이라네요. 기존 명품 브랜드 틀에 얽매여 있지 않던 그는 루이비통에서 남성복을 맡아 달라고 러브콜을 보내고 루이비통의 품에도 동시에 안겨 있습니다.

2015년 레드, 그린, 오렌지의 원색 컬러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화려한 패턴, 위트있는 디자인을 넘나들며 우아하고 클래식한 정체성을 뽐내오던 명품 시장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가 있었습니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알렉산드로 미켈레. 2019년, 이제 명품 좀 산다, 명품 안다 하는 사람이 미켈레를 모르면 대화가 안 통하는 세상이 되었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가장 유명하다는 미켈레부터 살펴볼까요. 그는 발탁되기까지 12년간 구찌 잡화 부문에서 내공을 쌓아온 무명 디자이너 출신입니다. 1972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자유분방한 히피 아버지와 영국 유명 영화사의 수석 비서였던 세련되고 멋진 여성인 어머니 사이에서 다양한 영감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일찍부터 의상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로마에 있는 의상학교를 졸업하고 니트 디자이너와 펜디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을 하며 초기 디자인 경력을 쌓았습니다. 2002년에 구찌 디자인 스튜디오로 오게 되면서 디자인 외에도 다양한 업무를 12년간 진행했지요. 2014년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프라다 지아니니가 매출 부진에 따른 책임성 사임을 이유로 구찌를 떠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겁니다. 미켈레가 수석 디자이너로 발표됐을 때 얼마나 시기 질투가 난무하고 그를 험담하는 사람들이 많았을까요. 무명이라는 우려를 모두 불식시키고 그는 명품업계에 ‘혁신’이라는 단어를 심는 데 성공합니다. 슈즈에 ‘퍼(fur)’를 달고 청바지에 뱀 무늬를 그려넣고 온갖 티셔츠에 오래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모두 소환해내다니요. 미켈레는 명품은 클래식하고 변치 않으며 우아함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바꿔 놓았으며 명품이 우습게 보았던 ‘트렌디함’을 무기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지요.

가장 안 변할 것 같았던 버버리도 요즘 심상치 않습니다. 17년간 브랜드를 이끌어 온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가고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지방시의 디자이너였던 이탈리아 출신 리카르도 티시가 지난해 3월 총대를 멨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티란토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사회에 일찍 진출해 가족을 부양했다고 합니다. 이런 배경이 현재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네요. 그는 지방시 재직시절 모델 캐스팅에 사활을 걸었는데요. 현재 빅토리아 모델 엔젤로 활약 중인 중국 출신 모델 밍 시를 처음 발굴한 이도 티시랍니다. 그는 미국 셀렙들의 우상으로 꼽히는데 그의 팬으로 밝힌 스타로는 비욘세, 리한나, 킴 카다시안, 니키 미나즈, 케인 웨스트 등이 있지요. 그가 오자마자 한 것은 버버리의 아카이브를 뒤져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의 이니셜을 딴 TB를 로고화시켜 구찌나 펜디, 루이비통처럼 모노그램으로 만든 겁니다. 체크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클래식해 보였던 체크 대신 젊은 층이 좋아하는 로고 플레이에 합류한 거죠. 티시는 매달 17일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콜렉션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명품이 SS(봄여름), FW(가을겨울) 등 시즌별로 콜렉션을 출시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도 외워둘까요. 스트리트 브랜드 ‘베트멍’의 창립 멤버이자 리더인 바잘리아는 옛 소비에트연방국 조지아 출신이며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컨템포러리 브랜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루이비통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2014년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7명의 멤버들과 베트멍을 설립했는데요. 2014년 FW 시즌 데뷔를 시작으로 브랜드 론칭 3년 만에 하이엔드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베트멍을 성공궤도에 올려놓은 그는 2015년 10월 알렉산더 왕의 뒤를 이을 발렌시아가의 패션 총감독으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만의 특유의 해체주의 콘셉트와 스트리트 감성이 럭셔리 하우스 발렌시아가와 접목을 하니 전세계 밀레니얼들이 열광할 수 밖에요. 그의 비대칭적인 청바지 밑단 디테일과 롱슬리브, 오버사이즈 핏의 스타일은 패피들이 추종하는 그것이 되었지요. 바잘리아는 베트멍 시절 마놀로블라닉, 리바이스, 칼하트, 리복, 쥬시꾸뛰르, 챔피언, 캐나다구스 등과의 협업을 통한 유니크한 의상을 참 많이 선보이며 패션을 넘어 문화를 만들어냈는데요. 그래서 현재 발렌시아가의 창의적인 감성이 나올 수 있었나 봅니다.

로에베는 J.W(조나단) 앤더슨이 오고 나서는 ‘해먹백’ ‘퍼즐백’‘ 조이스백’ 등을 잇백 대열에 올랐을 뿐 아니라 청바지, 티셔츠 등 의류를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올려놨는데요. 앤더슨은 유니클로와도 협업을 해서 이름이 알려진 바 있죠. 1984년 아일랜드 출신의 밀레니얼 세대 디자이너인 앤더슨은 평소 추진력이 좋고 아이디어가 뛰어나며 인간관계에서도 성실한 걸로 유명한데 다소 올드했던 로에베를 젊은 감성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지난해 셀린의 새로운 수장으로 합류하며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스타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은 1992~1995년 루이비통 모노그램 캔버스 프로젝트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1996년 이브 생 로랑에서 활약하게 되죠.이후 디올 옴므 브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다시 이브 생 로랑으로 돌아온 그는 브랜드에서 ‘이브’를 떼고 ‘생 로랑’으로 새롭게 변신시킨 후 한동안 캘리포니아에서 사진만 찍고 살았다고 하네요. 레이디 가가의 앨범 ‘The Fame Monster’의 자켓이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셀린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페미니스트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피비 파일로였는데요, 슬리먼은 오자마자 셀린의 로고부터 바꾸고 변신을 시도했는데요. 그가 감명 깊게 듣던 1970년대 뉴웨이브 장르의 음악들을 콜렉션에 반영하는가 하면 19 F/W 여성 콜렉션은 슬리먼 특유의 스타일에 페미닌한 핏과 소재를 잘 융화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힘일까요.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명품백은 장롱 속에 넣어두었다 1년 뒤 꺼내 들어도 유행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장인템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며 “이제는 매 시즌마다 디자인이 확확 변해 누가 들고 나오면 저건 2018년 에디션, 전 2017년 에디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행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생활산업부장 yvette@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