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날마다 유명인들의 이야기로 소란하지만 사실 세계를 지탱하는 것은 수많은 무명씨들이다. 세스의 그래픽노블에서 주인공은 조용히 사라진 어느 무명 만화가의 삶을 좇는다. 요절했을까. 자신의 재능에 절망한 걸까. 의문에 싸인 채 추적한 그 만화가의 후일담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는 부동산업자가 돼 가족들을 부양하다 평범하게 죽었다. 불행했을까. 자신의 재능과 꿈을 깎아 평범한 가장으로 돌아간 것이. 그러나 그의 노모는 그 아이의 삶은 불행도, 실패도 아니었다고 전하며 그가 남긴 기적 같은 한마디를 들려준다. ‘조금 비참한 게 영혼에는 좋아요.’
인생을 제멋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더욱 극소수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름도 자부심도 원망도 없이 가족을 부양하다 죽는다. 지난해 6개월간 원양어선을 탔던 소설가 김언수는 한 인터뷰에서 고된 뱃일을 마치고 저녁에 몸을 씻으며 환하게 웃는 선원들을 바라보다 ‘가족이 행복해서 내가 행복한 삶!’이라는 말을 떠올리고는 뱃전에서 울었다고 말했다. 나를 잃어서 아름다운 삶도 있음을, 나로 인해 너가 행복하므로 매일의 작은 비참쯤은 견뎌지는 삶도 있음을 생각한다. 세스는 ‘강해져야만, 끝내 이루어야만’ 완벽한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토닥인다.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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