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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소재 육성 어떻게]물리학과·수학과 나와도 영업맨...생명과학 전공땐 의전원·약대행

국내 기초과학계의 씁쓸한 현실

협소한 시장에 양질 일자리 부족

기초과학인력 해외 유출도 심각

탈원전에 원자력공학과는 도태





한 명문대 학부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한 A씨는 유학과 취업을 고민하다 결국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우수 이공계 인재를 지원하기 위한 국가우수장학금까지 받았던 A씨였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의 벽은 높았다. A씨는 “생명과학이 정말 재미있고 좋았지만, 유학을 다녀와도 제대로 일자리를 잡기 힘들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원하는 수준의 직업을 갖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의전원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며 “유학과 취업 둘 다 선택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시간을 벌기 위해 의전원에 간 것”이라고 토로했다.

A씨의 경우는 국내 기초과학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초과학 연구에 매진해 향후 산업계에 기여하고 싶은 인재라 하더라도 협소한 시장과 이에 따른 일자리 부족 탓에 어쩔 수 없이 의전원이나 약대 등 안정적인 진로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A씨는 “다른 기초과학 전공자를 봐도 취업하면 영업 같은 관련 없는 직무로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의전원이나 약대로 몰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의전원 같은 현실적인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기초과학 인력은 국내보다는 해외를 택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 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두뇌유출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국 61개국 중 18번째로 두뇌 유출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딴 B씨는 “이런 경우 한국은 교수 외에는 민간 자리가 없다시피 하고 교수 자리도 가뭄에 콩 나듯 한다”며 “미국은 이 같은 인재를 시장에서 활용하는 다국적 기업이나 연구소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 한 대학의 교수인 C씨는 “한국은 기초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이 약해 혁신 분야 인재를 되돌아오게 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인재를 담을 시장’이 국내에는 없다는 얘기다.





기초과학이 아니더라도 시장이 무너지자 인재가 유출되는 경우는 많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는 입학생 32명 중 6명이 자퇴했다. 입학하자마자 정책의 직격탄을 맞은 새내기들이 재수를 선택한 것이다. 경희대 원자력공학과에서도 한 학년 학생 50명 중 14명이 전과를 신청했다. 시장과 인재의 선순환과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공계 우대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대생들의 취업률은 떨어지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14년 73.3%이던 공대생들의 취업률은 2017년 67.7%로 하락했다. 5.6%포인트나 빠졌다. 전체 취업률이 1.9%포인트 하락한 것에 비해 더 떨어졌고 인문계나 사회계보다도 하락폭이 크다. 이에 대해 취업전문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한 대기업에 취업한 공대생 중 관련 직군에 배치된 인원은 30%에 불과하다”며 “취업준비생들이 지방이나 힘든 생산현장보다는 영업맨을 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필요성이 대두된 부품·소재 산업의 국산화를 위해서도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육성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타트업 등 육성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연구인력들이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도록 평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대학 연구실에 소속된 D씨는 “남들이 안 하는 연구에 도전하면 돌아오는 건 긍정적 평가가 아니라 힐난”이라며 “오히려 졸업만 늦춰질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스타트업 천국’으로 불리는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의 페레츠 라비 총장은 “이스라엘 정부의 R&D 평가원칙은 품질, 기술, 잠재적 상품성이다. 실패 한다 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미래 가치를 평가할 뿐이다.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정부에 투자금을 갚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는 “인재가 기술을 만들고, 기술이 돈(시장)을 만들고, 돈이 다시 일류 인재를 모은다”는 말이 격언처럼 남아 있다. 한국도 이 같은 선순환 구축을 위한 육성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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