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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아베와 트럼프의 '반도체 밀약'

이상훈 산업부 차장





최근 일을 복기해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열린 재계 총수와의 회동. 이날 자리에는 덕담만 가득했다. 트럼프는 화웨이의 ‘화’자도 꺼내지 않았다. 주요20개국(G20)회의에서 ‘반(反)화웨이’ 드라이브가 이완될 것이라는 신호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의외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떠나고 하루 지난 7월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반도체 소재의 대한(對韓)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우리로서는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지금 최고조로 치닫는 한일 간 갈등에 ‘기계적’ 중립을 취하며 사실상 일본 편을 들고 있는 트럼프는 아베의 이 카드를 정말 몰랐을까. 둘은 국제 관계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브로맨스’를 과시해왔다. 트럼프가 이미 아베의 ‘작전’을 사전에 다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럼 이제 반도체 소재의 공급이 장기간 차단돼 우리의 메모리 공장이 멈춘다고 가정해보자. D램에서는 미국의 마이크론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다. 낸드플래시에서는 일본 기업 도시바와 마이크론, 또 다른 미국 업체 웨스턴디지털이 약진할 것이다. 모두 미국 아니면 일본 업체다. 시나리오를 여기까지 써보면 아베와 트럼프의 이심전심, 더 나가 암묵적 밀약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트럼프로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최첨단 D램을 쓰는 자국업체가 마음에 걸리겠지만 피해가 크다고 보기도 어렵다. 마이크론의 도약, 또 한국의 메모리를 받지 못하는 화웨이·샤오미·ZTE 등 중국 업체의 피해라는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트럼프는 삼성에 ‘한국에서 고생하지 말고 미국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미 삼성은 지난 1998년 텍사스 오스틴에 공장을 지었다.

지금은 메모리 최정점에 있는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지만 2012년 일본의 엘피다가 마이크론에 인수되면서 치킨게임이 일단락되기까지 춘추전국시대 군웅 중 하나에 불과했다. 언제 또 미국·일본에 뒤질지 모른다. 지금 일본이 서로 얽혀 있는 공급망에 엄청난 균열을 주고 자국 기업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우리 반도체를 겨냥하고 있다. 삐끗하는 순간 나락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부지하세월인 소재 국산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만 되뇌고 있다. 삼권분립을 이유로 사법부 뒤에 선다고, 그간 ‘소재 개발을 왜 안 했느냐’고 기업에 다그친다고 문 대통령의 책임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번 사태는 반일 감정을 무분별하게 부추기거나 방조한 문 대통령의 탓이 크다. 위안부 합의 파기부터 소녀상 문제,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일본 제품 스티커 부착 조례 제정, 북핵 논의에서 일본 배제 등 일본을 자극한 사건이 하나둘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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