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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파란1, 2]다산 정약용이 '신부'였다고?

■정민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다산은 신부(神父)였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어려서 유학을 공부했으나 10대 후반에 서학을 받아들이며 천주교를 접했다. 특히 그의 20대 때는 박해 속에서도 천주교가 급속도로 확산한 시기다. 1789년 말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이자 다산의 매형인 이승훈이 쓴 편지에 따르면 신자 수가 늘어나 “다른 열 명에게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공인없이 임의로 신부를 임명한 가성직(假聖職)제도라는 뜻이다.

다산 연구자로 명망 높은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새 책 ‘파란(波瀾)’에서 당시 임명된 10명의 신부 중 하나가 정약용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조 임금이 ‘홍수’를 제목으로 시를 지으라 다산이 ‘나아방주’, 즉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인용했다고 전할 정도니 그가 천주교 신자였던 것은 분명하나 신부였다는 주장은 파격적이다.



다산은 1791년 진산사건 이후 천주교를 배척한다. 한국학 연구자들은 다산이 배교하고 유학자로 돌아왔다고 보는 반면 천주교계는 만년에 참회하며 신자로 돌아왔다는 식으로 의견이 갈린다. 저자는 정약용이 천주교를 버린 결정적 이유로 ‘정조’를 꼽았다. 그 상황을 비유해 책의 부제를 ‘다산의 두 하늘, 천주와 정조’로 붙였다. 책은 다산의 마흔 살까지 삶을 두 권으로 나눠 담고 있다. 각권 1만7,5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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