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개입·가짜뉴스·인프라 마비
사이버무기, 새 전쟁도구 급부상
北 ‘해커 군단’ 6,000명 운용 등
미 vs 북중러 ‘新냉전체제’ 재편
핵무기 처럼 ‘통제 필요성’ 역설
짐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2018년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은밀히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다. 이 보고서에는 사이버 무기로 전력망·통신망·수도시설 등 미국의 핵심 기반 인프라를 위협하는 나라들에 핵무기로 대응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건의가 담겨 있었다. 이는 전례 없는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이버 공격을 저지하는 데 미국이 완전히 실패한 것 아니냐는 국방부 내부의 불안을 반영한 것이었다.
신간 ‘퍼펙트 웨폰’은 디지털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 간 새로운 전쟁 도구로 부상한 사이버 무기의 활용 양상을 분석한 책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서 30년 동안 기자로 일하고 있는 데이비드 E. 생어가 워싱턴 정가를 누비며 집요하게 취재한 결과물을 담았다.
저자는 광범위하지만 은밀하게 진행되는 사이버 공격은 진원지를 특정할 만한 확증을 잡아내기 쉽지 않기 때문에 피해국이 보복을 단행하기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전쟁과 평화 상태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으며 오늘날의 전쟁은 선전포고도 없이 조용히 시작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북한은 지난 2016년 4~10월 8차례에 걸쳐 단행한 무수단 시험 발사에서 무려 7번이나 실패했다. 무수단은 과거 소비에트연방이 1960년대 잠수함 발사용으로 만든 미사일을 개조한 것이었다. 87%가 넘는 이 처참한 실패율은 미국의 보이지 않는 방해 공작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그렇다고 북한이 사이버 공격 분야에 관해 문외한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북한은 1998년 사이버 공격 부대인 ‘121국’을 만든 다음 명석한 두뇌의 청년들을 중국과 러시아로 보내 ‘컴퓨터 전사’로 육성했다. 국제연합(UN) 주재 북한 대사들이 대학의 컴퓨터 프로그램 강좌를 듣고 있는 사실이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레이더에 포착되기도 했다. 아버지 김정일의 뜻을 이어받은 김정은은 현재 6,000명에 달하는 해커 군단을 운용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가 감행한 선거 개입, 개인정보 해킹, 가짜뉴스 확대·재생산 등 목표와 양상이 다양한 사이버 전쟁에 각국이 뛰어들면서 오늘날의 세계는 최강대국 미국과 그 대척점에 북한·중국·러시아 등이 서 있는 신(新)냉전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지금은 비트와 바이트의 전쟁 시대’라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말은 국제정세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다.
물론 이 책이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사이버 전쟁이 만연한 현상을 기술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1945년 8월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했다. 자국이 지닌 가공할 만한 파괴력에 충격을 받은 미국 시민들은 수십 년에 걸쳐 치열한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 기나긴 논쟁을 통해 미국은 198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오직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저자는 이러한 반성과 성찰이 사이버 공격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고 말한다. 물리적 피해가 불분명한 탓에 그동안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으나 이제는 ‘우리의 발명품을 우리의 의지대로 통제할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방·안보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이 많은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첩보 스릴러 소설을 보듯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이는 물 흐르듯 매끄러운 번역에 힘입은 바가 크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읽는다면 한국인이 쓴 책이라도 해도 믿어질 만큼 ‘번역투’의 느낌이 거의 나지 않는다. 2만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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