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연휴다.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고궁을 방문하면 좋겠다.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고 감성도 일깨우니 일거양득이다. 주요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은 추석 당일만 제외하고는 연휴 내내 문을 열 뿐만 아니라 무료 관람의 기회도 제공한다. 게다가 국립박물관은 전국에 13곳이나 포진하고 있으니 명절 맞아 고향에 갔더라도 손쉽게 찾아갈 수 있다.
◇위대한 유산을 만나다= 서울 용산에 자리 잡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앞마당인 ‘열린마당’에서는 14일과 15일에 걸쳐 농악, 강강술래, 처용무, 가곡, 강릉단오제 등 다양한 전통공연이 펼쳐진다. 오방색 팔찌와 전통문양 장신구 만들기, 굴렁쇠·투호 등 전통놀이 체험행사와 무형문화유산 활용 연극놀이 등 교육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전시들도 다양하다. 기획전시실에서 한창인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900~100년 무렵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 지역에 있던 고대 국가 에트루리아 문명전이다. 독특한 사후 관념과 종교관을 가진 유물들을 통해 세련되고 신비로운 유럽 문명을 접할 수 있다. 상설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우리 강산을 그리다:화가의 시선,조선시대 실경산수화’ 전시도 인기다. 고려시대의 산수화부터 정선·김홍도를 비롯해 한시각·김윤겸·강세황·김응환·정수영 등 조선의 화가들이 그린 우리 실경을 만날 수 있다. 지난달 23일부터 새로운 작품들로 교체전시가 진행 중이라 재방문 관객이 많다. 어린이박물관에서는 가야의 철기문명을 주제로 한 체험형 전시가 최근 개막했다.
◇전국 국립박물관 활짝=지방의 13개 국립박물관들은 추석 연휴를 관객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전통놀이 체험·사물놀이·국악 공연·마술쇼 등을 다채롭게 마련했다. 지방 박물관들은 지역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 문명의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공주박물관에서는 백제 중에서도 웅진이 도읍이던 시기의 백제 문명, 김해박물관에서는 해양문화를 기반으로 철의 왕국을 이룬 가야 문명을 만날 수 있다.
광주박물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전, 전주박물관은 전북 서예계를 이끈 ‘석정 이정직’, 대구박물관은 영주 금강사 터에서 나온 유물전시, 부여박물관은 왕흥사 터에서 발굴된 사리장엄구 특별전을 열고 있다. 조선시대의 최첨단 무기인 ‘비격진천뢰’ 전시로 눈길 끈 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으로 특화했다. 창령사 터에서 발굴된 ‘오백나한’ 전시로 전국적 화제가 된 춘천박물관은 강원도의 역사를, ‘섬과 유배’를 주제로 특별전을 준비 중인 제주박물관은 제주도의 문화를 보여준다. 미륵사지 출토 유물을 통해 백제 문화를 보여주는 익산박물관, 영산강 유역의 문화와 마한의 역사를 품은 나주박물관도 찾아볼 만하다.
◇연휴 내내 고궁 무료=문화재청은 추석 연휴인 12~15일 내내 서울의 4대 궁과 종묘를 무료로 개방한다. 명절 관람객을 위한 문화행사도 마련했다. 경복궁에서는 대취타 정악과 풍물연희를 공연하는 ‘고궁음악회’가 열리고 궁중 약차와 병과를 시식할 수 있는 ‘생과방’ 체험이 진행된다. 창덕궁에서는 봉산탈춤과 줄타기, 풍물굿판이 13일 추석 당일에 열린다. 덕수궁에서는 전통춤 공연인 ‘덕수궁 풍류’와 대한제국 시기 고종 황제가 외국공사 접견을 재현한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가 펼쳐진다. 창경궁에서는 야간관람객을 위한 ‘고궁음악회’가 열리며 궁궐에 보름달에 내려온 듯한 모습으로 사진촬영 구역도 마련된다. 종묘에서는 관람 외에도 종묘 모형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한가위만 같아라=경복궁 내 자리한 국립민속박물관은 오곡백과의 풍성함에 대한 감사와 가을의 정취가 함께 하는 한가위의 의미를 살려 송편빚기, 차례상 차려보기 등의 세시체험을 준비했다. 추석 다음 날인 14일과 15일 양일간 박물관 야외공간 전역에서 32종의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전통 민속놀이 체험은 팔씨름·딱지치기부터 AR로 즐기는 민속놀이까지 16종, 친환경 에코백 만들기 등 가족 단위로 참여할 수 있는 공예 체험도 6종이나 마련됐다. 줄타기, 풍물놀이, 강강술래, 창작 연희극 ‘헬로 미스터 용’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이곳 박물관은 기획전뿐만 아니라 국립어린이박물관의 이용객 만족도가 높아 가족 방문객이 많은 편이며, 다양한 세시행사로 명절 연휴에도 인기다.
◇잃어버린 감성을 찾아서=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과천·덕수궁·청주의 4개관을 보유한 아시아 최대규모의 미술관이다. 12~14일 추석 연휴 기간 내내 무료 관람을 시행한다. 인스타그램에 미술관 방문 인증 사진을 올리면 추첨을 통해 문화상품을 받을 수 있다. 고궁도 거닐고 예술도 경험할 수 있는 덕수궁관에서는 미술관과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가 함께 마련한 ‘덕수궁 야외 건축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고종황제 서거와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으로부터 100년이 흐른 지금, 대한제국 시기에 품었을 법한 미래에 대한 꿈을 건축가 5팀이 작품으로 구현했다.
서울관에서는 앞서 간 여성작가 김순기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게으른 구름’이라는 전시 제목은 게으름의 창조적 가능성과 구름의 자유로움을 통해 예술적 개척자로서의 김순기를 보여준다. 과천관에서 열리는 곽인식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폐막이 임박했으니 꼭 챙겨봐야 한다. 곽인식은 일본의 모노하(物派)와 한국의 단색화에 두루 영향을 준 중요한 작가다. 미술관의 소장품 특별전 ‘균열’은 22일에 막을 내린다. 관람형 수장고로 문 연 청주관에서는 소장품전 ‘나만의 보물을 찾아서’와 설치작가 최정화의 야외프로젝트 ‘민들레’를 볼 수 있다.
◇한글로 배우고 놀자=용산에 위치한 국립한글박물관은 추석을 맞아 인형극 ‘목각인형콘서트’를 연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다양한 인형들이 줄 끝에 매달려 춤추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획전 ‘한글 타자기 전성시대’가 흥미롭다. 이 박물관에는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한글놀이터’, 외국인 관람객에게 인기인 ‘한글배움터’도 마련돼 있다.
◇보이지 않는 유산의 가치=전북 전주의 국립무형유산원은 14일에 가족단위 체험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명절음식 송편 만들기와 제기와 팽이 만들기, 투호와 굴렁쇠 굴리기, 윷놀이 등 민속놀이 행사를 펼친다. 이곳은 매주 토요일에 무형문화재 이수자 공연,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창작국악 공연을 연다. 1·2층의 상설전시실을 돌아보면 우리의 멋과 흥, 솜씨와 재주를 음미할 수 있다.
◇바다가 좋아=전남 목포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13~14일 양일간 해양유물전시관 야외광장과 라운지에서 ‘해양문화재와 함께하는 민속놀이 체험’ 행사를 펼친다. 섬마을의 명절 민속행사를 소개하는 민속 행사 사진전을 비롯해 대형윷놀이·사방치기·굴렁쇠 굴리기·투호놀이·제기차기·공기놀이·팽이치기 등의 민속놀이 체험이 마련된다. 어린이들을 위한 대보름 강강술래 팽이와 전통 연필꽂이 만들기도 진행된다. ‘한국의 수중보물’ 전시가 열리고 있으며 ‘어린이 해양문화 체험관’의 인기가 높다.
◇예향 광주, 예술 한가득=지난 7일 ‘휴머니티(Humanity)’를 주제로 건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광주비엔날레전시관과 광주디자인센터 일대에서 개막했다. 광주에서는 짝수해에는 국제 현대미술제인 ‘광주비엔날레’가, 홀수해에는 디자인 분야로 특화한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번갈아 열린다. 매년 가을 이맘때면 도시 전체가 예술로 달아오르는 셈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는 기획전 ‘공작인:현대 조각과 공예 사이’가 최근 개막했다. 수공예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1990년대 이후 현대 조각에 대한 새로운 조망이 눈길을 끈다. 김범·서도호·양혜규·강서경 등의 한국작가를 비롯해 로스마리 트로켈 등 굵직한 외국작가까지 참여해 귀한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두루 만날 수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