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을 발전시키는 것이 곧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일입니다. 정보기술(IT)·바이오 등의 혁신 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을 통해 투자금이 공급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가 시대적인 요구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이를 풀어야 할 과제들이 서로 엮어 있어 여러 규제를 한 번에 완화해야 원했던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올 하반기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일괄 처리돼 정책 간 시너지를 내기를 기대합니다.”
권용원(사진) 금융투자협회장은 여의도 사옥에서 본지와 만나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 혁파의 중요성을 숱하게 강조했다. 이는 국내 증시가 지지부진하고 투자자들은 갈수록 발길을 돌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시장에 활력을 넣자며 대안으로 논의된 법안은 국회에 올라가 공회전을 거듭하기 일쑤다. 이에 권 회장은 자본시장 활성화를 시급한 과제로 꼽으며 국회에서 관련 법안 처리가 진전되기를 기대했다. 또 자본시장을 둘러싼 규제가 해소되면 한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담=홍준석 증권부장 jshong@sedaily.com
◇자본시장 발전 위해 국가적 노력 필요…선진국 기준에 맞는 세제 개편 우선=“해외 투자자들을 만나면 한국에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지금까지 반도체를 비롯한 일부 기업에서 수익이 좋았지만 이제는 그만한 먹거리가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권 회장은 국내 증시가 침체한 상황을 꼬집으며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국내 증시가 주요 국가들에 비해 수익률이 턱없이 낮아졌고 국내 투자자들도 해외 주식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을 비롯한 대외변수가 큰 탓이기는 하지만 국내 기업의 활력이 뚝 떨어진 점도 한국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이유다.
권 회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금융투자 업계를 비롯해 산업계·정부당국 등이 힘을 모아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회장은 “현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포기할 필요는 없다”면서 “결국 실물경제의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데 금융투자 업계를 비롯해 산업계 등 실물경제계까지 국가적 공감대를 만들어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업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게 친기업 정책과 과감한 규제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 업계와 관련된 사안으로는 세제 개편을 대표적으로 꼽았다. 시중 자금이 기업으로 흘러가기에는 불합리한 세제가 곳곳에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게 손익통산 및 손실이월공제 관련이다. 현재는 주식·펀드 등 한 상품에서 큰 손실이 나도 다른 영역에서 수익이 나면 그 수익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여러 분야의 손실과 이익을 합쳐 나오는 순이익에 대해서만 과세를 하고 금융투자 상품에서 올해 발생한 손실을 이월해 이듬해 이익에서 공제한 후 남는 순이익에 과세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투자자들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자는 게 아니다. 미국·영국·일본·호주 등 주요 국가들의 과세 체계를 보면 손익통산 및 손실이월공제가 허가되지 않는 나라는 없다”면서 “불합리한 과세체계를 개선해야 모험자본이 유입될 수 있고 장기적인 투자가 가능한 기반을 만들어야 기업에 안정적인 자금조달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민 노후 대비 위해 퇴직연금제와 디폴트 옵션 도입 서둘러야=퇴직연금 개선도 권 회장 앞에 놓인 숙제 중 하나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며 퇴직연금 규모가 급격하게 커졌지만 정작 은퇴자들의 연금 수익률은 예금이자만도 못한 상황이 이어지면서다. 뿐만 아니라 급격하게 불어난 퇴직연금의 제도를 바꾼다면 그 자산은 국내 자본시장의 탄탄한 수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퇴직연금제 개선을 주장하는 이유다. 권 회장은 “저금리가 고착화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이 원금을 보장하는 방법만으로는 노후 대비가 될 수 없다”며 “1% 수익률로는 노후를 대비할 수 없어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와 디폴트 옵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금형은 회사와 분리된 별도의 수탁법인에서 노사와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를 구성해 연금의 운용 등을 결정하는 방식을 뜻하고 디폴트 옵션은 확정기여형(DC) 근로자가 별도의 운용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금융사가 알아서 운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중 디폴트의 경우 손실이 났을 때 그 책임을 둘러싼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권 회장은 “DC형 가입자를 상대로 조사해본 결과 좋은 상품을 추천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그게 바로 디폴트 옵션”이라면서 “디폴트는 근로자가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희망할 경우만 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디폴트 도입으로 자산배분을 다양화하는 운용이 필요하며 외국에서는 이미 도입된 제도”라고 덧붙였다. 권 회장은 또 “기금형을 도입하고 기금 간 연합을 가능하도록 하면 현재 연기금과 같이 투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서 “퇴직연금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것이 증권사·운용사의 먹거리를 찾자는 게 아니라 국민들의 노후 재산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 자산 증식 위해 공모펀드 활성화 반드시 필요=공모펀드 활성화 역시 중요한 과제다. 접근이 다소 제한적인 사모펀드에 비해 일반 국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투자 상품인 공모펀드의 위축세가 크기 때문이다. 또 공모펀드의 규모가 쪼그라들수록 국내 증시의 기초체력이 부족해진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권 회장 역시 공모펀드 활성화 대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수차례 반복하면서 힘줘 말했다. 권 회장은 “현재 가계 금융자산의 70%가 몰려 있는 부동산은 인구가 줄어드는 사이클을 볼 때 향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고 저금리가 고착화하면 예·적금도 (수익으로는) 힘들다”면서 “결국 좋든 싫든 금융투자 상품이 역할을 해줘야 하는 시기”라고 했다.
이에 평범한 투자자에게 접근이 쉬운 공모펀드로 자산 증식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역시 해결 방안으로 세제 개편을 우선적으로 제시했다. 권 회장은 “부동산은 장기보유특별공제도가 있는데 왜 펀드는 장기 투자에 혜택을 주지 않느냐”면서 “일반 국민의 재산과 관련된 차원에서도,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장기 투자에 대해 소득공제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공모펀드 상품이 다양해질 수 있도록 운용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권 회장은 “현재 공모펀드는 전통적인 주식형 및 채권형에 크게 편중돼 있지만 기관과 자산가들이 투자하는 펀드들은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는 형식”이라면서 “일반 투자자들도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시장 변동성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운용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모펀드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업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권 회장은 “판매사와 운용사 고객 간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면서 “실적 중심의 판매사 직원보상체계(KPI)를 고객 수익률, 고객 사후관리 등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현재 실적 중심의 평가 체계가 고객들의 단기 투자를 유도하고 불완전판매를 이끄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모펀드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는 환부만 도려야지 시장 전체를 규제해 성장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권 회장은 “사모펀드는 지난 2015년 10월 규제 완화를 계기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면서 “하지만 아직 산업 성장의 초기 단계에 있고 여전히 성장의 필요성이 커 논란이 된다고 해서 사모펀드 전반의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모펀드는 사실 국민재산인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의 비중이 더 크다”면서 “결국 기관화된 일반 개인의 자금이 들어와 있어 국민 재산 측면에서 접근해 사모펀드의 다양성 가치를 지키고 더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정리=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He is/
△1961년 서울 △1984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1986년 서울대 반도체 석사 △1996년 MIT 기술정책과정 석사 △1986~2000년 산업자원부(기술고시 21회) △1998~1998년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2005년 다우엑실리콘 대표 △2007~2009년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 △2009~2018년 키움증권 대표 △2018년 금융투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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