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외국어고·자사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한다는 잠정안을 마련한 것은 이들 학교가 대입 공정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진보단체들은 이들 학교가 귀족학교로 전락하면서 ‘교육 불평등’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교육부는 특권교육 해소를 주된 목표로 한 비공개 당정청협의회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정시 확대를 배제한 학생부종합전형 공정성 강화 방안 등과 함께 이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고교교육의 일대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교육체계를 국민들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개편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구체적인 공교육 정상화 방안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하향 평준화’만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교육계는 우려하고 있다.
잠정안에 따른 대상 학교는 자사고 38곳, 외고 30곳, 국제고 7곳 등 총 75곳으로 신입생은 매년 약 2만명에 불과하지만 시행될 경우 우리 고교교육에 일대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국내 엘리트 교육을 이끌어온 대표 학교들이 사라지고 일반고와 과학고·영재학교만이 남게 되는 등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
현재 이들 학교의 일괄 폐지는 대통령령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만 하면 돼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정권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상태다. 고등학교를 일반고·특목고·특성화고·자율학교로 구분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76조의2(고등학교의 구분)’와 관련 조항인 90조, 91조의3 등을 개정한다면 존립 근거를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정권 초반 고려됐던 고교체제 개편을 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특권교육 해소 정책을 빌미로 건너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나온 ‘고교체제 개편 3단계 로드맵’에 따르면 자사고·외고·국제고 등은 5년 운영성과 평가를 통해 일반고로의 단계적 전환을 유도하고 폐지를 포함한 고교체제 개편 방안은 국가교육회의 등에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다룰 예정이었다.
교육부가 자사고·특목고를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는 정책을 펴는 가운데 올해 전국 시도 교육청 평가를 받은 24개의 자사고 가운데 10곳이 탈락했다. 하지만 법원들이 재지정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자사고들의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단계적 전환 정책이 무력화되자 2025학년도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교육부가 이번에 ‘일괄 폐지’를 들고 나온 셈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골라 듣는 제도로 ‘고교내신 절대평가(성취평가)’와 함께 시행되는데 대입에서 자사고 등이 일반고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는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과 일반고 일괄 전환 시점을 연동해 자사고·외고·국제고가 흡수했던 ‘수월성 교육’ 요구를 일반고에서 충족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일반고의 고교학점제 시행 계획안은 아직 ‘백지’에 가까운 상태여서 학생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이 담보될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려면 성취평가제가 전제되고 재수강·낙제 등이 가능해야 하지만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조차 첫 관문을 넘지 못한 상태다. 결국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 외에 별다른 변화 없이 대학입시 과정의 변별력 논란만 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입 단계의 특권교육으로 자사고와 외고·국제고 등을 정면 겨냥하면서 20개 학교 모두가 공립인 과학고를 제외한 것도 논란거리다. 자사고·외고 폐지는 대통령 및 진보 교육감의 공약에 고루 들어 있었지만 과학고는 ‘열외’였다. 수능 영어영역의 절대평가 전환과 대학의 문과 기피로 현 사교육과 특권교육의 정점은 영재학교 및 과학고 입시 단계에 있기에 이런 상태에서 외고와 자사고가 사라질 경우 결국 과학고와 영재학교로의 ‘쏠림현상’은 더욱 심해지리라는 게 교육계의 판단이다.
교육부는 과학고 학생들이 의대 대신 이공계열을 택하는 등 높은 이공계 진학률로 과학교육 확대에 이바지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서울권 의대 정원이 한 해 1,000여명 수준으로 800명 수준인 영재학교의 의대 수요를 감안할 때 1,600명 내외인 과학고 학생들에게도 서울권 의대는 안 가는 곳이 아니라 못 가는 곳에 해당한다는 게 교육 업체들의 일관된 평가다. 한 관련 학과 교수는 “이상적인 방안이지만 특권교육이 해소되기보다 혼란이 커질 수 있고 차기 정권에서 또 뒤집힐 수 있다”며 “사교육의 정점인 과학고를 빼고 고입 단계의 특권교육을 논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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