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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벤처생태계 활성화 위해선 재도전지원 등 창업안전망 확충 필요"

<한정화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 회장>

벤처 돈 퍼주기보다는 초기시장 만들어주는게 더 효과적

최저임금 인상, 취약층인 자영업자-알바간 이해충돌만 초래

노동권력 기득권 때문에 정규직-비정규직 양극화 더 심화

한정화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장이 13일 한양대 경영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시장 확대를 꾀하는 수요견인형 정책으로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등 노동환경 변화에다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규제 등 글로벌 환경마저 어려워지면서 중소기업계의 고충이 어느 때보다 크다. 정부가 내년도 중소벤처기업 관련 예산을 역대 최대치인 13조5,000억원이나 책정했다지만 현장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중소기업청(중소벤처기업부의 전신) 수장으로서 중소벤처기업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한정화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장(한양대 경영대 특훈교수)은 “선의를 갖고 출발한 정책이라도 부작용이 있다면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회장은 13일 한양대 경영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예산투입 중심의 요소공급형 정책에서 벗어나 시장 확대를 꾀하는 수요견인형 정책으로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 초대 회장을 맡으셨는데.

△청장 재직 시절 현장을 다니면서 이론상 최상의 정책이라고 해도 현장에 적용하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온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현장과의 조율, 이해관계자 간의 조정이 필요해 경우에 따라서는 최선의 정책보다 차선의 정책이 나을 때도 있다. 중소기업 정책 전문가들이 같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한다는 데 뜻을 함께한 교수들이 학회를 창립했다. 정책포럼·상생포럼·국제포럼 등 전문포럼 형태로 운영하면서 실증적 연구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사구시의 자세로 학회를 운영해나갈 것이다.

-내년은 중소기업정책이 만들어진 지 60주년이다. 중소기업정책은 가짓수는 많은데 성과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1960년 7월1일 당시 상공부 공업국에 중소기업과가 설치된 것이 중소기업정책의 시초다. 정책은 크게 예산정책과 비예산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소기업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예산정책 쏠림이 심하다는 거다. 예산정책은 한정된 예산을 누구에게, 얼마나, 또 제대로 주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정부 돈이라는 이유로 흥청망청 써버리는 모럴해저드와 실력은 없으면서 정부 과제에 채택되는 역선택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비예산정책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인가.

△비예산정책은 크게 보면 제도혁신에 관한 것들이다. 제대로만 하면 (예산정책보다) 훨씬 효과가 크다. 현재의 예산정책은 스타트업들의 창업 초기에 효과를 발휘하다가 데스밸리에 들어서는 5년차 전후에 지원이 끊기는 한계를 갖고 있다. 자금투입이 절실한 연구개발(R&D) 고도화와 해외 시장 진출 시에는 오히려 자금이 끊기면서 시장의 실패가 일어난다. 반면 비예산정책 중 대표적인 구매정책은 현시점에 어떤 기술이나 서비스를 키울지 판단한 후 정부가 일정 기간 구매해주는 방식이다. 해당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경쟁이 일어나고 기술혁신이 이뤄진다. 미국의 중소벤처기업정책은 철저하게 조달 중심이다. 이처럼 요소공급형에서 수요견인형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신생 벤처는 단순한 R&D 지원보다 초기 시장을 만들어주는 게 생존에 훨씬 도움이 된다.

한정화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 회장이 13일 한양대 경영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시장 확대를 꾀하는 수요견인형 정책으로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한국의 고용시장부터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근로자들이 혜택을 받도록 한다는 게 기본 취지였지만 불똥은 엉뚱하게도 자영업자에게 튀었다. 우리나라는 고용시장에서 자영업자에 대한 의존도가 현저하게 높다. 자영업자 비율(25.4%)이 미국의 4배, 독일과 일본의 2.5배에 달한다. 특히 최저생계비(연간 1,620만원, 3인 가구 기준)도 못 버는 자영업자가 전체의 50%를 넘는 실정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영업자들이 자신의 소득 일부를 떼어내 아르바이트생에게 주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득이전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경제취약계층인 자영업자와 또 다른 취약층인 아르바이트생 간의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유럽 선진국의 경우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올 때,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급격한 산업 발전과 함께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한 정책적 개입이 필요했다. 기업 경쟁력이 올라가고 수익성이 좋아져 고임금 일자리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노동시장이 상향 평준화된다. 하지만 지금은 주력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글로벌 경쟁력은 약해지면서 기업가의 의욕이 꺾이고 있다. 대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중견·중소기업들도 해외로 공장을 옮기거나 회사를 매각하는 상황에서 고임금 구조까지 고착되면 일자리는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문재인 정부의 친노조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데.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는 재벌권력과 노동권력의 암묵적 담합이다. 과거 재벌이 커질 때는 노동권력과 대립상태였지만 지금은 양측이 공생관계다. 서로 존재를 인정하는 대신 일부 귀족노조가 대기업으로부터 고용 세습을 약속받는 등 불공정한 행위가 빈번해지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회에 손실을 전가하는 모순도 발생한다. 말 그대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다. 그나마 여러 규제를 통해 재벌개혁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지만 노동권력에 대한 개혁은 손도 못 대고 있다. 노동권력은 공고한 기득권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양극화가 심해지고 세대 간 문제까지 커지고 있다. 내년에는 선거까지 있으니 더더욱 손도 대지 못할 것이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벤처생태계를 활성화해야 하지만 여전히 창업안전망은 취약하다.

△사업 실패의 위험을 창업자가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현 구조가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킨다. 통계에 따르면 한 기업이 폐업하면 평균 8억8,000만원의 부채와 4,400만원의 세금 체납이 발생한다. 실패한 기업인 중 재기에 나서는 비중은 19%에 그친다. 창업의 최대 걸림돌이 실패의 위험부담으로 꼽힐 정도다. 이제 막 창업한 매출 1억원짜리 주식회사가 삼성 같은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상법상 규제를 받는 것은 문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상법과 별도로 ‘회사법’을 만들어 다양한 형태로 창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창업기업의 과점주주에 대한 2차 납세의무 부담도 덜어줘야 한다. 현재 법인에 부과되는 국세 등에 대한 납부액이 부족하면 무한책임사원 혹은 과점주주에게 부족분에 대한 2차 납세 의무가 부과되는데, 벤처기업의 경우 과점주주인 창업자나 투자자가 투자원금 손실뿐 아니라 제2차 납세의무까지 떠안는다. 결국 이들의 재기가 더욱 어렵다. 해외의 경우 과점주주를 대상으로 2차 납세의무를 부여하는 국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우리나라도 혁신벤처기업에 한해 2차 납세를 면제해야 한다. 이를 포괄하는 ‘재도전지원법’을 하루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회수시장 활성화도 시급한 과제로 꼽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창업 후 기업공개(IPO)까지 평균 11년, 인수합병(M&A)까지 평균 7년이 걸린다. 반면 중국은 각각 6년과 3년이다. 우리보다 2배 정도 속도가 빠른 셈이다. 특히 바이두·텐센트·알리바바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투자하고 직접 M&A에도 나선다. 그 자체로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정부가 보조금과 공공구매정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장을 만든다. 대표적인 예로 중관춘의 테크기업인 상탕커지(商湯科技·SenseTime)는 얼굴 인식뿐 아니라 보행자의 복장 등 정보를 실시간 분석한다. 2014년 창업한 이 회사 매출이 1억달러를 넘는데 중국 정부가 전국에 CCTV를 깔면서 기술을 구매해준 덕분이다. 칭화대와 홍콩중문대 교수들이 대거 창업에 참여했는데, 중국은 2015년 관련법 개정을 통해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특허를 산업화할 때 수익의 50% 이상을 개발자에게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에 직접 돈을 쏟아 붓기보다 이렇게 시장을 만들고 그 속에서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혁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소재·부품 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나왔다.

△한국과 일본은 수평적·수직적 분업 관계다. 비교우위를 지닌 분야를 중심으로 분업을 했고 이를 통해 글로벌 산업생태계가 조성됐다. 물론 중소기업이 개발한 우수한 소재·부품을 대기업이 구매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사명감이나 애국심에 기대 무조건 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한경쟁 시대에 기업들은 가장 좋은 품질로, 가장 싸게 만드는 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글로벌소싱이다. 일본은 특유의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특정 소재와 부품에서 축적 효과까지 확보하고 있다. 품질 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와 직결된다. 시간이 지나 일본과의 관계가 정상화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 중소기업이 자체 기술로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한 소재·부품을 개발했다고 가정하자. 일본 기업이 가격을 후려치면 어떻게 될까. 1년만 덤핑하면 해당 중소기업은 망한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오히려 지금처럼 퍼주기로 운영하면 소부장 지원정책 자체가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 기업이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를 키워야지 무조건 국산으로 대체하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He is…

1954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조지아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후 같은 대학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벤처연구소장·한국중소기업학회장·한국인사조직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2년10개월간 중소기업청장으로 근무하며 ‘역대 최장수 중소기업청장’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최근 창립된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장 초대 회장과 고(故) 이민화 교수의 뒤를 이어 창조경제연구회(KCERN) 이사장을 맡아 벤처생태계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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