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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므파탈 패피'들의 천국 핀란드…대안 소비문화를 엿보다

■신간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

■박현선 지음, 헤이북스 펴냄







신간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는 ‘중고의 천국’이라고 불릴 만큼 중고품을 사용하는 데 일상인 핀란드의 소비 문화를 다룬 책입니다. 대학에서 목조형가구학을 전공한 저자가 헬싱키미술대학(현 알토대학)에서 가구디자인 석사를 하기 위해 핀란드 헬싱키에 유학을 가서 겪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세간을 모두 새로 장만해야 했던 저자에게 유학생들은 끼르뿌또리(Kirpputori)’ 또는 ‘끼르삐스(Kirppis)’라고 불리는 중고가게를 소개해줬다고 합니다. 저자는 누가 사용했는지도 모르는 중고품을 쓰는 게 낯설기도 했지만 곧 이들의 문화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합니다. 저자가 펼쳐 보인 핀란드의 중고 소비문화는 불황에 환경오염 등의 이슈가 겹치면서 대안의 소비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기자 역시 플리마켓 등은 중고품을 사고 파는 곳은 해외 여행 갔을 때나 관광지로 들리는 것이지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한 적은 없습니다. 한국은 이제 쇼핑 천국인 데다, 마음만 먹으면 클릭 몇 번으로 신상들을 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패스트 쇼핑 국가’이지 않습니까. 저가 핀란드의 문화로 받아들인 중고품 소비는 어쩌면 빠르게 만들고 소비하고 폐기해 환경 오염을 부르는 요즘 시대에 대안적인 소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최근에 H&M 등 패스트 패션의 선두주자였던 스파 브랜드들이 ‘쓰레기 유발자’라는 오명을 들었죠. 이런 비판을 수용해 최근에는 지속가능성을 성장동력을 내세워 친환경 섬유 사용 비중을 늘렸습니다.

사실 옷뿐만 아니라 생활용품은 고쳐 쓰기보다 새로 사는 게 익숙하죠. 그런데 핀란드에서는 앞서도 언급했지만 모든 걸 재사용하는 중고 소비문화가 지배적입니다. 책을 읽을 때 왜 ‘재활용’이 아니라 ‘재사용’이라는 표현을 할까 의아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재사용보다는 재활용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니까요. 그런데 재활용은 재처리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요. 그러니 중고품을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인 것입니다.







핀란드에서는 단추부터 자전거까지 정말 일상에서 사용되는 모든 것을 재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블록마다 서너 개씩은 꼭 끼르뿌또리(Kirpputori)’ 또는 ‘끼르삐스(Kirppis)’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편의점이 곳곳에서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고가게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기부형 중고가게부터 판매대행 중고가게, 빈티지 상점, 골동품 상점, 벼룩시장 등 다양한 중고가게들이 즐비합니다. 중고 쇼핑은 핀란드의 소비문화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션 역시 마찬가지다. 의류 전문 중고가게 ‘우프(Uff)’는 젊은 ‘패피’들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인기입니다.

거리에서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올라오는 웹사이트 ‘헬룩스’에 소개된 젊은들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어느 시대에서 온 것인지 묻고 싶게 촌스럽기도 하지만 치명적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요즘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뉴트로 패션 같기도 하고요. 중고품으로 최첨단 뉴트로 패션 피플로 탄생한 핀란드 젊은이들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나이키 에어포스1 신발에 여자 친구의 중고 린넨 바지를 입은 미카엘(18세). /사진제공=헬룩스


“나이키 에어포스1 신발에 여자 친구의 중고 린넨 바지, 마리메꼬 셔츠를 입었어요.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 친구들이 많아서 여기 저기서 물건을 고릅니다. 대부분의 옷을 중고가게에서 구입하고 여러 스타일의 옷들을 섞어 입는 걸 좋아해요.” 미카엘(18세)

색상과 패턴을 섞거나 과하게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산드라(27세). /사진제공=헬룩스


“색상과 패턴을 섞거나 과하게 사용하는 것을 좋아해요. 갖고 있는 대부분의 옷과 신발은 내 취향에 맞게 수선해요. 오늘 입은 옷은 신발을 제외하고 모두 중고에요.”산드라(27세)

에어 조던 농구 저지와 할아버지의 무명 바지를 입고 아디다스 슬리퍼를 신은 일마리(18세). /사진제공=헬룩스




“에어 조던 농구 저지와 할아버지의 오래된 무명 바지를 입고 아디다스 슬리퍼를 신고 나왔어요. 힙합 아티스트나 전 세계 다양한 문화에서 영감을 받곤 해요. 브랜드는 신경쓰지 않아요. 보통 옷은 헬싱키에 있는 다양한 중고가게에서 사요.”일마리(18세)

2000년대 초반 패션에 푹 빠져있다는 야네떼(25세). /사진제공=헬룩스


“나는 중고옷만 입어요. 요즈음은 2000년대 초반 스타일에 푹 빠져 있어요.”야네떼(25세)

핀란드의 1020 ‘촌므파탈 패피’들이 얼마나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며 애착있는 중고품에서 의미를 찾는지를 보여주는 이 인터뷰는 소비와 정체성 그리고 자아가 얼마나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지 확인시켜줍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복고풍, 레트로, 뉴트로가 유행이지만 대부분 ‘신상’들입니다. 옛날 감성을 살린 디자인을 새로 만들어낸 제품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요. 그런데 핀란드에서는 진짜로 과거의 물건을 현재에 입는 ‘리얼 복고’가 유행인 것입니다. 물론 핀란드의 소비 문화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소비를 조장하는 문화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만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금새 만들어 졌다가 금새 폐기돼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을 부른다면 말이죠.









복고 열풍에 대한 ‘흔한’ 해석 중 하나는 ‘성장을 멈춘 시대에 과거를 그리워하는 향수’라고 하죠. ‘잘 나가던 과거의 향수’ 말이죠. 사실 핀란드에서도 중고품 사용이 자리잡은 데는 1990년대 초반의 경제대공황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는 동안 전 세계 경제는 저성장으로 진입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죠.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2%라고 합니다. 연초 전망치보다 낮아진 수치입니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 역시 10%대 성장 시대가 지났습니다. 올해는 6.2% 정도 성장할 거라고 합니다.

저성장 시대에 어쩌면 핀란드의 중고 소비문화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트렌드는 경제 상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한국에서도 머지 않아 중고 트렌드가 상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남에게 보이는 것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한국에서 정착이 될지는 사실 의문입니다. 헬룩스에 올라온 핀란드 1020의 당당한 코디는 부럽기는 하지만 그들처럼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는…. 저들을 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당당함이었습니다. 웬만한 자아로는 소화하지 못할 옷들을 정체성으로 드러내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책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에는 더 많은 소비 문화를 비롯해 핀란드의 이국적인 풍경들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덮으면서 느낀 건 아무리 중고라도 해도 핀란드의 세련된 디자인은 멋스럽다는 생각, 그래서 중고제품이라도 손이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디자인이 진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고제품을 아무렇지 않게 입고 쓰는 풍경이 과연 한국에서도 몇 십 년 후에는 펼쳐질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헤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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