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지 않으면서 시원한 집이다. 열달나흘은 이천도자예술촌 내에 659㎡ 규모의 땅에 두 개의 공방과 가족이 사는 집으로 구성한 공간이다. 공예가인 건축주 가족은 독립된 일터와 함께 나무와 꽃을 마음껏 가꾸고 보금자리까지 삼을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이에 대한 건축가의 화답이 바로 열달나흘이다. 건축주가 지은 열달나흘이란 이름에는 ‘일 년 중 두 달, 일주일에 삼일은 일을 내려놓고 쉬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담겼다. 그래서 열달나흘은 삶의 다양한 단면을 담으면서도 복잡하지 않고 트여있는 나지막한 집으로 만들어졌다.
열달나흘의 전체적인 모습은 한옥 같으면서도 유럽 교외 지역의 주택과 닮았다. 나무로 만든 보와 도리가 입체적으로 교차하는 구조나, 곳곳에 설치된 한지로 된 문, 2층 상부의 다락은 마치 경상북도 민가의 대청에서 안방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면 실용적이고 반듯한 실내 공간은 잘 꾸며진 양식 건축물을 보는 듯하다. 또 과거 사원이나 궁전건축의 외부를 두르며 중앙정원을 감싸는 복도인 ‘회랑’을 목조로 구성한 모습은 외국 건축양식을 한국화한 듯한 인상을 준다.
평면은 마당을 중심으로 공방과 집이 ‘ㄷ’자로 둘러싸고 있다. 이에 마당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실내에 있는 구조가 된다. 마당을 중심으로 각 공간이 서로 이어져 있다. 거실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안방과 욕실, 또 하나의 방이 있고 북쪽으로는 식당과 다용도실, 화장실이 있다. 거실과 식당은 마당에 닿아있다. 거실과 마당 사이에는 커다란 한지 문을 달았다. 때에 따라 여닫으면서 날씨와 시간 변화에 따른 빛과 풍경을 조절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안방과 거실 사이에도 접이식 한지 문이 달려있다. 이에 안방에서 문을 열면 거실과 마당, 식당과 다락이 한눈에 보이는 구조다. 마당과 두 개의 공방, 한옥을 닮은 집이 서로 한눈에 바라보면서 소통하는 형태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회랑은 이 공방주택의 전면부에 놓여있다. 두 공방을 연결하는 기능을 하면서도 중심에 마당을 품고 있는 형태인데, 이는 집 바깥과 안을 구분 짓는 경계임과 동시에 아무런 문을 달지 않아 주택의 내·외부를 이어주는 역할도 한다. 회랑이 감싸고 있는 마당은 바닥 높이보다 50㎝ 높게 설치했다. 마당을 높인 이유는 옆 내부공간에 깊이감을 주는 동시에 내부에서는 마당이 더 가깝게 느껴지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 마당의 쓰임도 각기 다르다. 공방에서 서로 나와 같이 쉬기도 하고 텃밭도 가꾸는 ‘쓰는 마당’이 있고 도자기 공방 앞으로 일하는 작업 마당도 있다. 건축가는 이를 두고 “건물 안팎의 서로 다른 마당들은 다양한 삶의 풍경을 담도록 계획된 것”이라며 “그냥 비워진 개념적인 마당이 아니라 느낌과 실체를 가진 마당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민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1층의 공방은 서로 다른 분위기로 각각 독립된 공간이다. 길 가까운 쪽에는 자수공방 있다. 자수공방은 목구조로 된 넓은 공간에 외부에서는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마당과는 맞닿아 활짝 열린 공간이다. 도자공방은 흙이나 도자기와 대조를 이루는 회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두 공방은 높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형태로 배치됐다. 공방을 연결하는 회랑을 이용하면 각 공방으로 출입할 수 있다.
1층의 공간은 특히 외부와 연결된 느낌을 극대화했다. 수평적으로는 회랑이 외부와 연결돼 있고 수직적으로는 ㄷ자의 지붕 사이로 마당에 햇빛이나 빗물이 떨어진다. 1층 공방에는 안팎으로 넓은 유리창이 있어 집 바깥의 풍경과 마당의 풍경을 모두 볼 수 있다.
주거공간으로 마련된 2층 역시 마찬가지다. 거실의 역할을 하는 공간에는 난간이 이어져 있고 그 앞은 중앙 마당과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통유리가 설치돼 있다. 거실과 난간 공간 사이에는 한지 문을 여닫게 돼 있다. 특히 2층의 경우 흔히 볼 수 있는 주택 처럼 하얀색의 단정한 방과 목조 천장을 설치해 한옥의 느낌을 내는 거실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열달나흘이 독립과 조화라는 두 개의 상반된 개념의 키워드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공방은 독립되어 있지만, 외부공간은 연결 회랑을 통해서 원활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한 특징을 차별점으로 꼽았다. 공간과 장소를 편안하게 구현했다는 점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마당과 지붕의 높이를 보이도록 설계하고 지붕의 경사도 그에 맞춰 완만하게 떨어지는 점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평가다. 나무의 쓰임도 칭찬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중목구조 건물이라는 특성을 살리기 위해 구조미도 가미해 건축적 가치를 높였다”고 말했다.
/김흥록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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